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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최순실 사태 막으려면 개헌 필수 … 핵심은 분권”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3면 지면보기
새 정부 첫 정기국회 맞은 정세균 국회의장
김경빈 기자

김경빈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정기국회가 지난 1일 개회했다. 올해 정기국회는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출발했다. 당장 촛불정국에 이어 조기대선이 치러지면서 국회에서도 여야가 바뀌었다. 반면 여소야대와 다당제라는 한국 정치사에서 흔치 않은 구도는 지난해와 다를 게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법전쟁이 예고되고 있듯 정치권의 해묵은 대립과 갈등도 그대로다. 그런 만큼 협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헌과 민생이라는 두 가지 현안도 당면과제다.

권력구조 포함 개헌안 연내 확정
여론 수렴 후 내년 5월 국회 의결
대통령 권한 분산, 지방 분권 역점

與 거수기, 野 발목 잡기 구습 벗고
먼저 양보하는 게 협치의 출발점

새 정부, 권위주의 답습 경계하고
조금 더디더라도 정도 걸어가야

 
이처럼 복잡다난한 과제를 과연 올해 정기국회에서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국회 수장으로서 여야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정기국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협치와 개헌의 해법은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 들어봤다. 인터뷰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국회의장실에서 1시간10분간 진행됐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자면.
“정말 역동적인 1년이었다. 다이내믹했달까, 다사다난했달까.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특히 국가적으로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어려운 시기에 어깨가 굉장히 무거웠다. 국회의장으로서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막중한 상황이었다. 사실 지난해 탄핵안도 의석 구조상 가결될 수 없는 구조였다. 바른정당이나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로서는 눈감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너무 질서정연하게 3분의 2 이상 탄핵안에 찬성하며 무혈혁명을 이뤄낸 데 대해서는 우리 국회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세계 의회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거다.”
 
여소야대 다당제하에서 협치가 화두인데.
“그동안엔 사실상 양당제를 하다가 이젠 5당 체제가 되지 않았나. 원내교섭단체만 4개다. 협치가 안 되면 여당도, 야당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대미문의 정치 실험이 진행 중인 셈이다.”
 
협치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무엇보다 여당은 정부의 거수기가 되면 안 된다. 야당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구습을 버려야 한다. 이걸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여야 모두 필요하다.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게 협치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하려면 공천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야 각 당 원내지도부도 신념을 갖고 보다 독립적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협치의 성공이 선거·정당제도 개혁과 연계돼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도 국회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혼자 하는 건 파트너십이 아니잖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했던(왼쪽 사진)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해 12월엔 같은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했다. 그는 “13년 전엔 정말 분노하며 어떻게든 막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이번엔 국민에게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점거했던(왼쪽 사진)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해 12월엔 같은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했다. 그는 “13년 전엔 정말 분노하며 어떻게든 막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이번엔 국민에게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동물국회 피하려다 식물국회 돼버려
정 의장은 지난해 정기국회 개회사 때 정부와 정치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논쟁을 불렀다. 올해도 지난 1일 개회사를 통해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협치 현실에 자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개선 방안 중 하나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제안하고 나섰다.
 
국회선진화법이 뭐가 문제라는 건가.
“원래는 양당제하에서 거대 여당과 국회의장의 권한 남용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거다. 이를 지금의 다당제에 적용하려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다. 당장 어느 당이 안건조정제도를 발동해 브레이크를 걸면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도 180일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 이래선 탄핵도, 개헌도 할 수가 없다. 서로 치고받기만 하는 동물국회를 면하기 위해 이 법을 만들었더니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돼버린 상황이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예산안 문제를 거론했다. “반대로 예산안의 경우 정부 여당이 버티면 야당이 어찌할 방법이 없게 돼 있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인데, 입법은 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이 유리하고 반대로 예산은 여당이 편안하게 법이 바뀌면서 둘 다 균형을 상실해 버렸다. 이래선 곤란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선진화법을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다당제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손을 좀 보자는 거다.”
 
여야 입장은 어떤가.
“19대 국회 때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개정하자니까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젠 이런 부끄러운 모습은 그만 보이자. 우리 정치도 1987년 이후 10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더 이상 장기집권은 힘들어졌다. 이렇듯 언제든 여야가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듯 역지사지할 줄 모르면 국민의 심판을 면키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돼가는데 총평을 하자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 어려운 계층을 돌보려는 자세, 열심히 소통하며 권위주의를 없애려는 모습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내가 새 정부에 주는 점수보다 국민이 더 후하게 주니 참 고맙다. 그런데 굳이 꼽자면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 지도자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선 안 되며 좀 달라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내로남불이란 말도 있지 않나. 예전에 ‘저건 아닌데’ 했던 것은 지금도 아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무슨 일이든 절대 민주적 절차를 생략하거나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조금 더디더라도, 돌아가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게 된다. 그게 느린 것 같지만 더 빨리 가는 길이다.”
 
정 의장은 이에 더해 ‘실무적 완결성’을 주문했다. “정책을 추진할 때 최대한의 완결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서두르다 보면 지향하는 바가 아무리 옳고 바르더라도 공격의 빌미나 허점을 제공하게 되고, 그로 인해 본말이 전도돼 오히려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평가도 제대로 못 받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기국회에서 특히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개헌에 필요한 작업을 최대한 진행하는 것, 협치 틀을 만들어가는 것, 민생 관련 법안 처리에 성과를 내는 것. 이게 이번 정기국회의 3대 목표다.”
 
개헌이 최대 쟁점인데, 지금 이 시점에서 개헌이 왜 필요하다고 보나.
“제2의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중된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 우리나라 대통령이 가장 제왕적이지 않나. 독재국가 빼고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권하는 수밖에 없다. 이젠 30년 된 낡은 틀을 바꿀 때가 됐다. 또 하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 지금은 말이 지방자치지 반쪽 자치도 아니고 2할 자치에 불과하다.”
 
기본 원칙이 있다면.
“나름대로 3대 원칙을 세워뒀다. 먼저 국민에 의한 국민참여개헌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9번 중 7번은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한 개헌이었다. 4·19 이후 3차 개헌과 6·10 민주항쟁에 의한 현행 헌법에 그나마 국민의 뜻이 반영됐지만 이 또한 한계가 뚜렷했다. 또한 미래지향적 개헌을 통해 분권화를 이뤄야 한다. 열린 개헌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전국 순회 대토론회를 여는 한편 국회 잔디마당에 자유발언대를 만들어 누구든 와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개헌 시간표는 마련해 놓았나.
“올 초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됐는데 여기서 연말까지 개헌 합의안을 도출해 내도록 할 것이다. 늦어도 내년 초까진 결론을 내고 내년 3월까지 국민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뒤 내년 5월 국회 의결 후 내년 6월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목표다.”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인데, 만약 이 부분에서 합의가 안 되면 빼고 갈 수도 있나.
“그건 앙꼬 빠진 찐빵 아니겠나. 핵심을 빼놓고 헌법을 개정했다고 할 순 없다. 어떻게든 권력구조 합의까지 이뤄낼 생각이다.”
 
‘그게 합의가 되겠어’라는 회의도 적잖다.
“그런 우려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 75%와 전문가 88%, 국회의원 90%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도 적극 하겠다고 하지 않나. 이렇게 개헌 여건이 좋았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 기회를 꼭 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헌은 국민과 국회·정부 등 세 주체가 함께하는 개헌이 됐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정부도 의견을 내면 개헌특위에서 적극 수렴하도록 하겠다. 민주주의에선 국민이 주권자 아니냐. 개헌은 말로만 주권자인 시대에서 진정한 국민주권시대로 나아가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다.”
 
증세 불가피, 꼭 할 일은 하는 게 진짜 정치
민생국회에 주력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경제주체 중 누구도 편안한 데가 없다. 정말 잘나가는 초대기업 빼곤 다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규제개혁을 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먼저 배려하고 양극화 완화 입법도 최우선으로 처리할 생각이다. 그래서 중산층과 서민들이 ‘아, 국회도 우리에게 힘이 돼줄 때가 있구나. 잘하면 민생고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해줘야 한다.”
 
증세 논란이 뜨겁다.
“원론적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다만 증세를 누가 부담하느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세금이 걷혀야 지출도 할 것 아니냐. 하지만 증세는 인기가 없다 보니 모두들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비록 표를 손해 보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게 진짜 정치다. 그렇지 않을 거면 정치를 뭐하러 하나.”
 
법인세 인상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김대중 정부 때 법인세를 28%에서 26%로 내리려고 할 때 내가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안을 내며 강력히 싸워서 결국 27%로 막은 적이 있다. 지금도 법인세가 경쟁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내리는 추세라는 점이다. 이를 역행하는 게 어떨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변수 사이에서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이는 이념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초대형 우량법인만 조금 더 부담시키는 정부안은 나름 괜찮다고 본다. 소득세 신규 구간 신설은 적극 찬성이다. 다만 뺏는 식으로 하지 말고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국회 세종시 이전에 대한 견해는.
“관습헌법상 국회는 수도인 서울에 위치해야 한다. 추후 개헌안에 명시될 경우 이전이 가능해질 수는 있을 거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건 개헌과는 무관하다. 다만 적잖은 재정이 소요될 것인 만큼 재정 대비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다.”
 
내년 국회의장 퇴임 후 계획은. 대권 도전설에 도지사 출마설까지 벌써 정가의 관심이 적잖다.
“퇴임하면 평의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웃음).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랬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다. 그저 탄핵과 개헌을 잘 마무리했다, 국민의 삶에 조금이나마 힘이 됐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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