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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독<鴆毒>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29면 지면보기
漢字, 세상을 말하다
짐은 중국 남방 광둥(廣東)성에 산다는 전설상의 독조(毒鳥)다. 몸길이 21~25㎝, 몸은 붉은빛을 띤 흑색, 부리는 검은 빛을 띤 붉은 색, 눈은 검은색이다. 뱀을 잡아먹는데 온몸에 독기가 있어 배설물이나 깃이 잠긴 물을 마시면 즉사한다고 한다. 짐독은 후한서(後漢書) 확서전(霍諝傳)에 처음 보인다.
 
“어떤 이가 대장군 양상(梁商)에게 확서의 외숙부 송광(宋光)을 모함했다. 제멋대로 조정의 조서(詔書·명령서)를 날조했다는 내용이다. 송광은 투옥됐다. 당시 15세였던 확서는 양상을 향해 붓을 들었다. ‘소생의 외숙은 지위가 주 지사(州長)에 이르도록 늘 나랏일을 우선시하고 법을 지켜왔으니 실 한 올의 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엄한 조정의 조서를 멋대로 고쳤다는 주장은 매우 의심스러운 고변입니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감히 저지를 수 없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굶어 죽기를 앞둔 사람이 독초로 허기를 채우는 것(毒草充飢)과 같고, 목마른 자가 짐독으로 갈증을 푸는 것(음짐지갈·飮鴆止渴)과 같으니 입술에 적시기만 해도 위(胃)에 이르기도 전에 죽고 말 것입니다.’ 양상은 두 번 놀랐다. 서신의 논리 정연함에 놀랐고, 서신을 쓴 자가 불과 15세의 소년이라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양상은 이 사건을 재심한 뒤 의심스러움을 낱낱이 밝혀 황제에게 고했고, 송광은 석방됐다. 이로부터 확서의 이름은 낙양(洛陽)성 전체에 알려졌다.”
 
‘음짐지갈’과 비슷한 뜻으로 ‘살계취란(殺鷄取卵)’이 있다. 달걀을 얻으려 닭의 배를 가른다는 얘기다. 살계취란은 이익을 잃는 정도지만 음짐지갈은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니 정도로 따지면 음짐지갈이 한 수 위다.
 
북핵 문제도, 원전 폐기도, 과거사 해결도 사실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면허증’ 운운하며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급하다고 ‘면허증’ 있는 척하며 짐독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분히 따져 보고, 설득하고, 부딪쳐 본 뒤에야 정답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답은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니까.
 
 
진세근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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