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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난 새는 둥지를 돌아보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30면 지면보기
삶과 믿음
마음이 허전해서 자꾸 쳐다보게 되네. 대문간 처마 밑의 빈 둥지. 새끼를 깐 제비가 머물던 둥지. 하루에도 수백 번을 들고 날며 젖은 흙을 물어다 정성껏 마련한 둥지. 둥지를 완성한 후 알을 낳고, 알을 품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 노란 주둥이에 벌레를 잡아다 먹이던 어미제비들. 사나운 장대비가 내려도 빗속을 뚫고 벌레를 잡아다 새끼들을 먹이던 모성애 강한 제비들. 마침내 새끼들이 눈을 뜨고, 날개가 자라고, 마당으로 나와 비상을 연습하고, 벌레 사냥도 연습하고 하더니… 어느 날 새끼제비 세 마리, 어미제비들과 함께 사라졌다. 종적이 없네. 아하, 그렇구나. 둥지를 떠난 새들은 둥지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그렇게 제비가 머물던 시간, 한 석 달쯤 될까. 그동안 나는 학생이었다. 제비학교 학생. 수업료도 없는 수업 기간 동안 내가 지불한 건, 제비가 알 품을 땐 발소리를 낮추고 조심조심 걷기,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에게 어미제비들이 먹이를 물어 나를 땐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봐 주기. 이제 제비들이 떠난 빈 둥지를 쳐다보는 허전한 순간조차 나에겐 소중한 수업시간. 그래, 제비들이 둥지를 떠나는 순간 둥지를 돌아보지 않듯이, 내가 머무는 둥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지. 집착이 무엇이던가. 마음이 쏠려 버리지 못하고 애면글면 매달리는 것이 아니던가.
 
둥지? 어떤 이에겐 재산이, 어떤 이에겐 권력이, 어떤 이에겐 명예나 지위, 또 어떤 이에겐 지식이 둥지가 될 수 있겠다. 으뜸의 가르침(종교)은 이런 둥지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으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모든 욕망을 버리라고 하진 않는다. 다만 낮은 욕망에 사로잡혀 살지 말라고. 으뜸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인도 현자들의 경우, 욕망을 무조건 금하지 않고 욕망의 대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만일 어떤 사람의 욕망이 육신이라면 그는 간부(姦夫)가 될 것이다. 만일 그 욕망이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라면 그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만일 그 욕망이 신이라면 그는 성자가 될 것이다.”(라마크리슈난)
 
그러나 오늘날 으뜸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이들조차 ‘신’을 욕망하는 이는 드물다. 표피적인 욕망의 충족에 목숨을 걸지언정 존재의 근원에 대한 관심은 냉담하다.  
 
하늘의 은총으로 나는 지금 한적한 시골에서 낡은 한옥을 보금자리 삼아 산다. 나와 내 가족만 사는 건 아니다. 제비나 참새도 둥지를 틀고 살고, 개구리와 뱀도 살고, 땅강아지와 두더지도 살고, 지렁이와 박쥐도 산다. 공생이다. 나는 내가 머무는 보금자리를 내 소유로 여기지 않는다. 숱한 동물이나 식물들이 내 곁에 머물다 떠나는 것처럼 나와 내 식구들 역시 잠깐 머물다 떠날 뿐. 보금자리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삶을 고해(苦海)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제비들처럼 둥지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순간마다 자족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고진하 목사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과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주 한살림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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