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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합의 존중’ 판례 취지 무시, 임금체계 개편 더 어려워져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1면 지면보기
[뉴스분석]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 파장
6년을 끈 기아차 통상임금 1심 재판이 지난달 31일 노조의 일부 승소로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노조 측 청구금액(1조926억원)의 39%인 4223억원을 회사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의 여파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노사가 상호 합의했기 때문에 매년 수천억원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이라며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번 판결로 인해 향후 임금체계 개편 논의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의성실 원칙 등 판단기준 애매
노사갈등 전방위 확산 불러
현재 대법원 계류 사건만 20건

 
실제로 최근 통상임금 관련 판결은 재판부별로 엇갈린다. 지난달 18일 광주고법은 금호타이어 노조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인정된다”고 신의칙을 받아들여 사용자 측의 손을 들어 줬다. 한국GM도 같은 논리로 노조 측이 패했다. 기아차 재판부가 “최근 9년간 흑자를 기록한 점을 고려할 때 임금을 추가 지급하더라도 경영에 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신의칙은 근로기준법에 어긋난 내용이라도 노사가 합의했다면 효력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가 경영 성과를 고려해 판결을 내린 셈이다. 재계에서 정치적 쟁점을 사법부에서 판단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경영 분야에까지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아차 관계자는 “이번 판결대로 임금을 지급한다면 3분기에 당장 적자가 난다”며 “경영 성과까지 예측해 노사 협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통상임금 소송만 하더라도 20건에 이른다. 현대차의 경우 1, 2심 재판부는 ‘근무일수가 한 달 중 15일 이상일 경우에만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요건을 근거로 현대차가 지급한 상여금의 고정성이 없다고 판단, 노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최영기(전 한국노동연구원장) 한림대 겸임교수는 “현대차가 재직자 요건을 상여금 규정에 넣은 건 사무적 우연일 뿐이었다”며 “이로 인해 기아차와 현대차의 통상임금 판결이 엇갈린 일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제조업 노조는 1987년 이후 기본급 대신 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늘리는 식으로 회사와 임금협상을 했다. 노조는 손쉽게 실제 임금을 늘릴 수 있고, 사측도 기본급 인상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아차만 하더라도 휴가비·김장비·체력단련비 등 100가지가 넘는 별도 수당이 존재한다.
 
임금제를 연공서열형에서 성과연봉제로 바꾸면 통상임금 관련 분쟁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기아차 판결로 인해 노사 합의로 임금제를 개편할 가능성이 더 작아졌다. 기아차의 경우 노사 한쪽이라도 항소한다면 사용자 측의 충당금(미래 지급금액)에는 연 15%의 이자가 붙는다. 한 재계 관계자는 “1심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노사 화해를 언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받는 돈이 많아질 노조가 합의할 이유가 없다”며 “법원이 노조에 타협을 거부할 인센티브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통상임금 확대로 인건비 증가에 직면한 기업들이 국내 생산·고용 축소에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 2013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액은 최대 21조9000억원에 달한다. 당장 기아차만 하더라도 9월 한 달간 일요근무(특근)를 하지 않기로 했다. 특근수당도 통상임금에 연동되는 만큼 수당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다. 회사 관계자는 “통상임금이 법원 판결대로 늘어날 경우 생산직 임금이 이론적으로 연 1억원을 넘길뿐더러 현대차보다도 많아진다”며 “또 다른 노-노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통상임금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교수는 “노조에 반하는 법을 만들기 쉽지 않겠지만 신의칙 기준 등 애매모호한 관련 법령을 이번 기회에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침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불필요한 노사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장 지도를 강화하고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김 부총리는 구체적인 개정 방향이나 일정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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