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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이가 울면 같이 우세요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30면 지면보기
[꽃중년 프로젝트 사전] ‘위로하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서점 매대에서 들어 올렸을 때만 해도 이 시대 여자 후배의 귀여운 응석이려니 생각했다. 딸 아이에게나 읽어 보라고 할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원의 마음을 담아 구매만 해놓으려 했다. 그런데 계산대에서 몇 장을 넘기면서 ‘어, 이것 봐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82년생. 필자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야 마땅한 주인공 그녀의 삶이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소설이 아닌 논픽션,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였다. 서점 한구석에 그대로 웅크려 앉아 독파해 버린 이유다.
 
내가 장녀로 태어났을 때 한숨을 내쉬며 술 드시러 나가셨다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친할머니께 나는 남동생의 그림자에 가려져 제대로 환영받지 못했던 손녀다. “여자가 왜 그래”라는 말을 수만 번 들었고, ‘여자로서’ 지켜야 할, 하지 말아야 할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살아온 내 모습을 어떻게 이렇게 잘 묘사해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은 82년생이고 작가도 78년생, 한참 후배다. 그리고 2003년생인 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은 솔직히 좀 먹먹하다.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될 때쯤이면 이 소설이 과연 ‘남의 이야기’이고 ‘픽션’ 같아질 수 있을까.
 
그런데 결혼이 빨리하고 싶다는 딸 아이는 집에서 살림을 멋지게 해 줄 남편을 만나고 싶단다. 집에서 웹툰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직업도 좋을 듯하다며 진지한 표정이다. 아들을, 손자를 키우고 있는 어르신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아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중년 남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상 참 많이 변했네’ 하며 혀를 끌끌 차는 분들이 거의 모두일 것이다.
 
한국 남자는 왜 한국의 ‘지영이’들을 이런 식으로만 규정하는 것일까. 한국 남자의 마초적 사고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혹시, 『삼국지』는 아닐까. 성공을 원하는 남자라면 무릇 세 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는 남자들의 ‘인생의 책’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남자들은 권력의 서열화와 노회한 전술을, 또 처세의 비법과 폭력적인 입신 양명을 배운다고 알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우리 사회는 ‘남자다움’을 교육한다. 남자다운 과묵(寡黙)이 그렇고(남자 선배들을 20년 이상 만나며 느끼는 확신은 수다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거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교훈이 그러하며, 남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훈련받는다. 좋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왜 여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며,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을 배운 것일까.
 
이 땅의 수많은 ‘지영이’ 중 하나로서 필자는 이 시대 수많은 ‘철수’들에게 고하고 싶다. 남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도 대부분 없어진 지금, 그저 커다란 중압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중년 남성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내 짝꿍 ‘지영이’를 위로해 달라고. 지영이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 옆에서 핀잔 주지 말고 같이 울어달라고. 지영이가 말을 하고 싶어 하면 털퍼덕 앉아 같이 수다를 떨어 달라고. 책장에 『삼국지』 전집이 꽂혀 있다면, 그 옆에는 지영이가 좋아하는 서정적인 시집도 슬쩍 꽂아 달라고. 그럼 그 몇만 배로 지영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허은아
(주)예라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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