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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조약 10년만에 다시 전쟁 일으킨 독일, 유럽은 왜 못 막았나

중앙일보 2017.09.02 06:00
1925년 10월 26일 스위스 남부 휴양 도시인 로카르노에서 유럽의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조약이 체결됐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조인된 베르사유조약의 후속 조치로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와 패전국 독일 그리고 신생 독립국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참여한 ‘로카르노조약(Pact of Locarno)’이다.

1929년 1월 라인란트의 코블렌츠에 주둔한 프랑스군이 라인 강 일대를 감시하고 있다. [사진 wikipedia]

1929년 1월 라인란트의 코블렌츠에 주둔한 프랑스군이 라인 강 일대를 감시하고 있다. [사진 wikipedia]

사실 일부 승전국들도 우려를 표했을 정도로 제1차 대전의 모든 책임과 배상 의무를 패전국에게만 지운 베르사유조약은 체결 당시부터 독일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런 혹독한 조약으로 독일을 응징하는데 가장 앞장섰던 나라가 프랑스였다. 1871년 패한 보불전쟁의 굴욕과 제1차 대전의 엄청난 피해를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는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만일 전쟁이 재발한다면 이번에는 프랑스가 아닌 독일 영토에서 싸움이 벌어지도록 국경 인근의 라인란트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프랑스는 제1차 대전에서 20~30대 남성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을 정도였고 전투의 대부분이 프랑스 영토 내에서 벌어져서 물적 피해도 극심했다.
 
그러나 라인란트를 점령 당 한 독일의 불만은 베르사유 체제를 위협하는 일종의 뇌관과도 같았다. 결국 승전국들은 이를 보완할 새로운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했고 신생 바이마르 정부가 이끄는 독일도 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새로운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대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로카르노조약이었다.
 
로카르노조약의 주역인 (좌로부터) 독일 구스타프 스트레제만, 영국 조셉 챔벌레인, 프랑스의 아리스티드 브리앙. 그들은 평화를 이끈 공을 인정받아 1925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사진 wikipedia]

로카르노조약의 주역인 (좌로부터) 독일 구스타프 스트레제만, 영국 조셉 챔벌레인, 프랑스의 아리스티드 브리앙. 그들은 평화를 이끈 공을 인정받아 1925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사진 wikipedia]

이 조약의 기본은 제1차 대전 이후 획정된 이른바 1919년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민족자결주의 명분에 힘입어 전후 많은 신생국이 탄생하고 여러 나라의 국경에 커다란 변동이 생기면서 분쟁이 수시로 발생하자 로카르노조약은 현 국경선의 준수와 분쟁 발생 시 평화적인 처리 방법을 규정했다.
 
각론으로는 인접한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새로운 국경선을 독일이 절대 준수하도록 다짐받았고,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결정에 따르도록 규정했다. 이와 동시에 키를 쥐고 있던 프랑스를 설득하여 점령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라인란트를 영구히 비무장지대로 남기도록 결의했다.
 
엄밀히 말해 프랑스군의 철군을 뺀다면 베르사유조약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패전국으로 제약이 많던 독일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고, 너무 과하다고 평가된 배상금 경감에 따른 별도의 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즉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유럽의 평화를 수호하자는 결의였다.

1926년 독일이 국제연맹에 가입하고 1930년 프랑스군이 라인란트에서 철군함으로써 조약을 이행시켰다. 이를 이끌어 낸 영국의 조셉 챔벌레인, 프랑스의 아리스티드 브리앙, 독일의 구스타프 스트레제만은 1926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라인란트에 군화 발이 다시 들리기 시작한 것은 암울한 미래의 시작이었다.
 
뮌헨 회담 후 런던에 도착하여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긴 대가로 히틀러로부터 평화를 지키겠다는 서명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네빌 챔벌레인. 하지만 불과 1년 후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진 wikipedia]

뮌헨 회담 후 런던에 도착하여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긴 대가로 히틀러로부터 평화를 지키겠다는 서명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네빌 챔벌레인. 하지만 불과 1년 후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진 wikipedia]

1936년 독일은 이전의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라인란트에 군대를 전격 주둔시킨 후 대외 침략에 나섰다. 독일은 1938년 오스트리아 무혈 합병에 성공하자 다음으로 수데텐란트를 노렸다. 조셉 챔벌레인의 이복동생인 네빌 챔벌레인이 로카르노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문제는 독일 측 상대가 스트레제만 같은 위인이 아니라 히틀러라는 악마라는 것이었다.
 
열강들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권을 무시하고 독일의 수데텐란트 합병을 승인한 대가로 히틀러로부터 평화를 준수하겠다는 서명을 얻어냈다. 네빌 챔벌레인은 귀국 후 공항에서 평화를 지켰다고 주장하였으나 불과 1년 후 제2차 대전이 시작됐다. 악마에게는 그 어떤 조약이나 서명도 유효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역사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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