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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 파일] 느림 운동 -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중앙일보 2017.09.02 05:00
느림 운동 Slow Movement

천천히 삶의 여유를 즐기자는 현대인들
슬로시티, 슬로푸드 운동에 관심 확산

슬로시티에 30개국 236개 도시가 참여
국내에서도 증도·청산도 등 13곳 등록

전통음식 지키는 '맛의 방주' 프로젝트
제주재래김 등 우리 먹거리도 등록돼

2007년 말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완도군 청산도 [중앙포토]

2007년 말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완도군 청산도 [중앙포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생활의 속도를 줄이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행복을 찾자는 운동이다.

아울러 느리게, 천천히 생활함으로써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는 게 느림 운동의 취지다.
빠른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고,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패스트푸드를 먹는 생활습관이 환경에 부담을 준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나타난 운동이다. 
느린 생활을 통해 자원소비를 줄이고 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사람들은 빨리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때론 걷는 것보다 더 늘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 선설은 환경훼손을 낳기도 한다. [중앙포토]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사람들은 빨리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때론 걷는 것보다 더 늘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 선설은 환경훼손을 낳기도 한다. [중앙포토]

걷는 것보다 빨리 이동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대신에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게 된다.

자동차보다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고속열차를 타지만, 고속열차는 곧고 바른 레일을 설치해야 한다.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과정에서 환경 훼손을 피할 수 없다.
경부고속철도 건설 현장.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철도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환경훼손을 피할 수는 없다. [중앙포토]

경부고속철도 건설 현장.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철도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환경훼손을 피할 수는 없다. [중앙포토]

사람들은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더 빠른 속도로 일하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싫어하면서도 점점 빨라지는 생활 속도에 적응해야만 한다.
프란츠 알트는 『생태주의자 예수』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현대인의 조급함을 지적한다.
 

“가속화의 파괴성은 느림의 창조성을 쫓아낸다. 사과나무를 키우면서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거나 열매가 익는 데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다릴 줄 모른다면 조만간에 사과나무는 열매를 하나도 맺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원리가 어린이의 성장과 성숙에도 적용된다. 오늘 우리가 자연과 어린이에게 요구하는 속도는 자연도 어린이도 감당해낼 수 없는 수준이다. (중략)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생태문제는 대개 속도의 문제다. 우리는 자연과 자원을 너무 빨리 갈취했다.” -프란츠 알트, 『생태주의자 예수』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감자튀김.패스트푸드는 싑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영양 불균형 등 건강에 나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찬수 기자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감자튀김.패스트푸드는 싑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영양 불균형 등 건강에 나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찬수 기자

무분별한 소비 욕구를 줄이고 생활의 속도를 늦추자는 생각은 슬로시티(Slow City) 운동,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등으로 이어진다.

슬로시티 운동은 2000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의 시장이던 파울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가 마을 사람들과 세계를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한 데서 시작됐다.
국제슬로시티연맹 로고. 달팽이와 도시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국제슬로시티연맹 로고. 달팽이와 도시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슬로시티 운동은 ‘빨리빨리’를 부르짖기보다는 ‘느리게 살기’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전통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친환경적인 생활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지난 2010년 한국을 찾은 사투르니니는 “급하게 달리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고 물건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빠르다는 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만큼 실수나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까지 국제슬로시티연맹에는 전 세계적으로 30개국 236개 도시가 등록이 됐다. 심사를 거쳐 슬로시티로 지정받더라도 5년마다 이뤄지는 재심사를 통과해야 계속 슬로시티로 남아있을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남양주·영월·제천· 예산·태안·전주·담양·신안·완도·상주·청송·영양·하동 등 13곳이 슬로시티로 등록이 돼 있다.
이는 이탈리아 등 유럽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숫자다.
청보리와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 슬로시티 ` 전남 완도 청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돌담길을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중앙포토]

청보리와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 슬로시티 ` 전남 완도 청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돌담길을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중앙포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슬로시티인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는 자동차로 휙 둘러보는 식의 관광이 아니라 갯벌과 염전 체험, 자전거 하이킹 등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보는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증도에서는 친환경 세제가 보급됐고, 하천 수질이 개선되고 물고기나 개구리 등의 생물도 늘어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매력 때문에 증도뿐만 아니라 담양군 창평, 완도군 청산도 등 전남지역 슬로시티를 방문하는 관광객 숫자는 매년 120만 명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슬로시티 운동이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행복을 가져다주기보다는 관광 상품화되면서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슬로시티 운동은 슬로푸드 운동과도 연결된다. 슬로푸드 운동은 통조림이나 냉동식품, 가공식품, 그리고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자는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한 스페인 계단 부근에 맥도날드 햄버거 매장이 들어선 데 격분한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가 제창하면서 시작됐다.

 
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 고장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집에서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자는 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식품을 운송하는 데 차량을 덜 이용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오염물질 배출도 줄일 수 있다.
국제슬로푸드본부의 로고

국제슬로푸드본부의 로고

슬로우푸드 운동은 전통적인 요리를 천천히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슬로푸드운동은 이제 세계 160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제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재단(Slow Food Foundation for Biodiversity)에서는 1996년부터 ‘맛의 방주(Ark of Tast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된장·고추장·간장 등 전통 발효식품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슬로푸드다.[중앙포토]

된장·고추장·간장 등 전통 발효식품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슬로푸드다.[중앙포토]

이 프로젝트는 기독교의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처럼 사라질 우려가 있는 토종 종자와 전통음식들을 골라 보존하자는 운동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맛의 방주’에 등재된 음식이 3770개에 이르며, 이 가운데 50가지 음식은 국제슬로푸드 한국협의에 의해 등재된 한국 먹거리들이다.
남양주먹골황실배와 제주재래감, 울릉국화, 제주재래돼지 등이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느린 화학운동(Slow Chemistry Movement)도 등장하고 있다.
공장에서 제품 생산을 위해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화학반응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에너지와 또 다른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이로 인해 환경오염을 일으키게 된다.
느린 화학운동은 화학반응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앞당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천천히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납을 석 달 정도 천천히 산화시켜 백색 안료를 얻는 방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느린 화학운동에 의한 반응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열을 가하지도 않고, 촉매를 첨가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느림 운동 관련기사
 
관련 도서
『느린 것이 아름답다 In praise of slow』
 
칼 오리너 지음 ∣ 박웅희 옮김 ∣ 대산출판사
점점 더 빨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빠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천천히 느리게 사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책. 24시간 내내 일해야 한다는 24시간 문화 때문에 잠자는 시간까지 자유롭지 못함을 지적한다. ‘덜 하는 것이 더 많이 하는 것’이라는 생활방식을 적용해 보라고 충고한다.
 
 
 
책표지

책표지

『생태주의자 예수 Der ökologische Jesus』 

 
프란츠 알트 지음 ∣ 손성현 옮김 ∣ 나무심는사람
이 책은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는 지구, 생태적 위기를 맞은 지구를 살리는 방법은 예수가 몸소 실천하면서 보여준 모습과 가르침을 따라하는 것이란 메시지를 바탕에 깔고 있다. 생태적 예수의 눈으로 현재 우리의 에너지, 수자원, 교통 문제 등을 하나씩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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