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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이유정의 주식 대박은 단지 우연일까

중앙일보 2017.09.02 01:45 종합 26면 지면보기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2015년 4월 22일,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하나에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건강기능식품 백수오 제품의 90%가 가짜며,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섞였다는 내용이었다. 갱년기 여성 건강에 좋다고 해서 ‘백수오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반품과 불매 등 난리가 났다. 백수오 원료를 공급하던 내츄럴엔도텍 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8만6600원에서 연일 바닥을 치며 한 달도 안 돼 10분의 1 토막이 나 8610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9400명의 개인투자자들이 6000억원의 손해를 봤다.
 

‘합리적 의심’ 드는 게 정상인데도
코드에 눈 감아버린 청와대 검증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서 어제 사퇴한 이유정 변호사(이하 존칭 생략)가 ‘가짜 백수오 사건’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은 단지 우연일까. 2013년 이유정은 비상장이던 내츄럴엔도텍 주식 1만여 주를 주당 2만2000원, 모두 2억2000만원어치를 매입했다. 이 주식은 그해 10월 코스닥에 상장됐고, 2015년 초 9만원대로 치솟았다. 이유정의 보유 주식 주가도 400% 폭등한 셈이다. 소비자원 발표와 주가 폭락이 있기 전 이유정은 자신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5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운(運)이 억세게 좋았다고 하기엔 마법처럼 절묘했다. 당시 내츄럴엔도텍 임원들은 주가 폭락 직전 내부 정보를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자신들의 주식도 처분해 물의를 빚었다.
 
이유정은 “부동산 투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보니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유정 본인 재산 16억5000여만원 중 주식 비중이 15억원(91%)에 달한다. 그것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업만 선택하는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1년 반 동안 제조업체인 ‘미래컴퍼니’ 주식을 거래해 5억원의 차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게 정상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주식으로만 10억원대 대박을 치는 게 당연했을까. 돈을 번 게 무슨 죄냐고 생각했을까. 낮은 가격에 사고 비쌀 때 파는 기막힌 감(感)을 부러워한 것일까. 자신의 잣대에 맞춰 대단한 재산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인사 검증에서 몰랐을 리 없다. ‘꾼’도 아닌데 수십억원의 주식을 거래하는 냄새를 풍겼지만 그냥 넘겼다. 이유정은 정치권을 기웃거린 이념적 편향성에다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공직 배제 5대 비리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사통과했다. ‘코드’ 앞에서 아예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무능과 부실이 빚어낸 또 하나의 검증 참사다. 권력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들에게 교훈이 되는 의미는 있겠지만.
 
돈 문제에 관한 한 사퇴했다고 어물쩍 덮어선 곤란하다. ‘주식 귀재’의 비결에 미공개 정보 등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수 있다. 탐욕의 잔치를 즐길 때 개미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한 만큼 적폐 척결 차원에서 조사를 지시해야 한다. 이유정은 “불법이 개입된 적은 없다”고 했으니 조사에 응하면 그만이다.
 
‘이유정 파동’의 진짜 피해자는 헌법재판소다. 헌재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 자신들이라고 자부한다. 재판관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에 기여했다. 뜨거운 조명을 받던 탄핵정국과 달리 요즘은 찬밥 신세다. ‘헌재 소장 실종 사태’가 7개월째 계속되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다. 김이수 소장 권한대행의 운명은 정치권의 흥정거리로 전락했다. 이유정은 헌재만 망신시킨 꼴이 됐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소장과 재판관의 위상이 너무 허접해졌다”고 푸념했다. 헌재라는 게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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