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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판이 곧 정치”라는 현직 판사의 위험한 발상

중앙일보 2017.09.02 01:40 종합 26면 지면보기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는 인천지법 오현석 판사의 주장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판사들 저마다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오랜 법 경험과 지혜의 축적물이라 할 수 있는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는 주장도 했다.
 
판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오 판사 주장의 전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다. 하지만 이는 법관이 어떠한 외부 압력도 받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지, 자신의 정치적 편향에 따라 판사 마음대로 재판하라는 게 아니다.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조항임에도 오히려 문구 중 ‘독립’에 방점을 찍어 멋대로 해석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인으로서의 판사가 소신이나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순 있으나 판결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 입각해야 하며, 사법부 전체의 일관성도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판사들이 저마다 자신의 성향 또는 정치적 색채가 가미된 판결을 내리면 재판이 판사에 따라 널을 뛰는 그야말로 ‘원님 재판’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법원이 정치에 예속되는 사법 파괴로 이어질 우려마저 있다. 그런 판사와 판결을 국민이 신뢰하고 용인할 것이라는 오만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잖아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이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한 사례를 보는 국민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 같은 사법부의 정권바라기를 없애고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법치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것이 곧 적폐 청산이며 사법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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