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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미술] 한국 미술이 전하는 말

중앙일보 2017.09.02 01:40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모든 비엔날레의 어머니’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11월 26일까지)는 두 차례 세계대전 때를 제외하고 지난 122년 동안 격년으로 열려 왔다. 미술로 세계를 보는 국가관과 본 전시가 함께 진행된다. 한국관은 개인사와 한국사, 아시아와 서구를 가로지르며 입체감 있는 전시를 보여줬다. 입구부터 모텔과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요란한 네온 설치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용과 호랑이, 공작새의 꼬리가 번쩍이는 코디 최의 ‘베네치아 랩소디’다. 새로운 ‘상품’을 찾아 눈을 번뜩이는 글로벌 화랑과 미술계 스타를 꿈꾸는 욕망을 ‘카지노 자본주의’에 빗댄 작품이다.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관의 주인공은 두 사람 더 있다. 이완과 이완의 작품에 등장하는 K씨다. 1936년생 K씨는 작가가 서울 황학동 고물시장에서 구입한 사진 1400여 장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그를 내세워 일제강점기에서 촛불혁명에 이르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개인사와 버무려 냈다. 다른 방에는 668명을 인터뷰해 만든 668개의 벽시계가 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간다. 시계의 속도는 각 사람이 한 끼를 위해 일해야 하는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선전에 등장하던 가족상을 차용한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는 중앙에 놓였다. 텅 빈 얼굴은 가속화된 경제성장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장식한 코디 최의 설치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사진 리카르도 토세토]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장식한 코디 최의 설치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사진 리카르도 토세토]

본 전시에 포함된 이수경의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은 세션 주제인 ‘전통’을 해부한다. 백자와 청자 도자기 파편을 쌓아 올린 5m에 육박하는 작품은 얼핏 한국의 전통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알고 보면 도자기 틈을 금가루 섞인 옻칠로 메우는 것은 일본의 전통이다. 제목의 아홉 용은 중국 전설에서 따왔다. 서구의 시각에서 아시아 작가를 틀 짓는 ‘고유의 전통’에 대한 작가의 뾰족한 일침이다. 글로벌한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이라는 상반된 과제는 언제나 제3세계 작가의 몫이었다. 이수경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척하며 이를 조롱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은 이수경 작가가 지난 5월 11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출품작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은 이수경 작가가 지난 5월 11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출품작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비엔날레 테마는 ‘만세, 예술 만세’. 시대착오적 예술지상주의가 아니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수단으로 예술의 역할을 강조했다. 요즘 강대국 중심의 신고립주의는 인류가 이상으로 삼던 조화로운 상생과 더 멀어지고 있다. 식민과 분단, 전쟁과 독재를 견딘 역사의 굴곡만큼 한국 미술이 세계에 전할 메시지는 또렷하다. 한국관의 주제 ‘카운터 밸런스’는 그래서 더 알찬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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