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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판 꺾고, 스프레이 뿌리고 … ‘통행료 먹튀’ 작년 1429만대

중앙일보 2017.09.02 01:01 종합 8면 지면보기
김모(41)씨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투명한 스티커를 자기 자동차 번호판 숫자 위에 붙인다. 스티커는 인터넷에서 샀다. 이 스티커를 붙이면 단속 카메라가 김씨 차를 찍어도 번호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카메라 플래시에서 나온 빛을 스티커가 반사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통행료가 만만치 않은 먼 구간을 갈 때 스티커를 붙인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누구나 내야 하는 통행료를 안 낸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차로 늘어난 탓
연 20회 이상 상습차만 8만4696대
민자도로는 소송으로만 징수 가능
도로공사 관리 도로보다 먹튀 심해

김씨 같은 ‘고속도로 통행료 먹튀족’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미납한 차량이 1429만 대. 2015년(1114만 대)에 비해 315만 대(28%)나 늘었다. 미납 액수로 보면 지난해 348억원으로 2015년의 262억원보다 86억원(33%) 증가했다. 2000년 하이패스 도입 이후 미납 건수와 금액에서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연간 20회 이상 통행료를 안 낸 차도 지난해 8만4696대나 됐다. 2015년의 6만4612대에 비해 2만여 대(31%) 늘었다. 2012년(3만9397만 대)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미납한 통행료는 지난해 74억원으로 2015년 48억원에 비해 54%나 급증했다.
 
이렇게 먹튀가 급증한 데는 통행료 징수가 현금에서 하이패스로 넘어가는 측면이 크다. 현재 고속도로로 다니는 자동차 중 하이패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80%에 이른다. 2020년엔 모든 톨게이트가 무인 징수 방식으로 바뀐다. 이 가운데 하이패스 차로를 통과하면서 통행료를 안 내는 차량이 늘고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가장 흔한 수법은 김씨처럼 카메라에 찍혀도 자동차 번호를 식별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번호판에 특수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반사 스티커를 붙이는 수법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검은색 천이 내려와 번호판을 가리거나, 번호판이 180도 뒤집어져 번호가 사라지거나, 번호판이 바람에 꺾이게 해 고속 주행 시 번호가 안 보이게 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번호판에 반사 스티커를 붙이거나 번호판이 바람에 꺾이게 해 잘 안 보이게 한 차량. [사진 한국도로공사]

번호판에 반사 스티커를 붙이거나 번호판이 바람에 꺾이게 해 잘 안 보이게 한 차량. [사진 한국도로공사]

 
번호판이 보이지만 실제 사용자와 소유주가 다른 이른바 ‘대포차’도 상습적인 먹튀 주범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대포차 거래 2만2849건을 적발해 2만3805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거래 또는 이용한 대포차는 총 2만4601대에 달했다. 2015년 같은 기간에 적발된 대포차 9870대에 비해 149%나 증가했다.
 
번호판에 반사 스티커를 붙이거나 번호판이 바람에 꺾이게 해 잘 안 보이게 한 차량. [사진 한국도로공사]

번호판에 반사 스티커를 붙이거나 번호판이 바람에 꺾이게 해 잘 안 보이게 한 차량. [사진 한국도로공사]

민자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보다 먹튀가 더욱 심각하다. 먹튀를 해도 추후에 통행료를 받아낼 수 있는 권한이 민간사업자는 도로공사보다 약한 점을 노린 것이다. 도로공사는 차량 압류 등을 통해 강제 징수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사업자는 소송 외에는 통행료를 징수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최근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자도로에서 통행료 먹튀족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라고 미납 통행료를 다 받아내는 것은 아니다. 전체 미납금액 중 통행료를 못 받는 비율이 6%가량 된다. 도로공사는 상습 미납 차량의 이동 경로와 이용 시간을 파악해 이들 차가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나들목에서 차량을 강제로 인수하기도 한다. 더러는 차적 주소지를 방문해 차량을 인수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차에 이미 압류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도로공사가 돈을 받아낼 권리는 뒤로 밀리는 게 대부분이다.
 
한국도로공사 이덕성 영업처 차장은 “상습 체납을 줄이려면 한국도로공사에 문제 차량의 고속도로 진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렇게 되면 번호판 훼손 차량이나 상습 미납 차량 등을 톨게이트 진입 전에 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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