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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법연구회 판사 “재판이 곧 정치” … 법원 내부서도 “사법부 불신 초래” 비판

중앙일보 2017.09.02 01:00 종합 8면 지면보기
현직 판사가 “각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리자 법원 내부를 비롯한 법조계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오현석 판사, 법원 게시판에 글 올려
“대법원 해석, 추종·복제하지 말고
각 판사의 정치적 성향 존중해야”
전문가 “판례, 남의 해석 아니다”

오현석(40·연수원 35기) 인천지법 판사는 지난달 31일 법원 내부망 게시판인 코트넷에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오 판사는 진보 성향 연구회로 꼽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 참가자다.
 
그는 “과거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판사들이 법률기능공으로 자기 역할을 축소시키고 근근이 살아남으려다 보니 정치에 부정적 색채를 씌운 것 같다”며 “정치색이 없는 법관 동일체라는 환상적 목표에 안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런 고착된 구시대 통념을 자각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고 전제한 오 판사는 “판사 개개인은 고유한 세계관과 철학, 그 자신만의 인식체계 속에서 저마다의 헌법 해석, 법률 해석을 가질 수밖에 없다. 판사들 저마다의 정치적 성향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헌법과 대법원의 판결도 언급했다. 그는 “판사는 양심껏 자기 나름의 올바른 법 해석을 추구할 의무가 있고 그 자신의 결론을 스스로 내리려는 취지가 헌법 제103조(법관의 독립)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통념·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10여 일 동안 단식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난 뒤 법원행정처 차장이 인천지법을 찾자 단식을 중단했다.
 
오 판사의 주장에 비판하는 법관이 적지 않다. 설민수(48·연수원 25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코트넷에 반박글을 올렸다. 설 부장판사는 “(법관의 다양성과 정치적 표현에 대한) 논의가 법관이란 지위와 결합됐을 때는 논의조차 삼갈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 논리로 보기 쉬운 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 재판 기록과 법리에 의해 판단했다고 변호할 수 있는 방어방법을 걷어차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게시판에 익명으로 “법관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업무에 반영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의견을 드러내는 글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글도 올라왔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도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재판에서 드러날 경우 재판 당사자는 판결을 인정하지 못하고 국민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밖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노명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례 중심의 영미법 국가뿐 아니라 성문법 국가에서도 상급심의 판결에 대한 구속력을 인정한다. 대법원 판례를 남의 해석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선미·문현경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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