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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트럼프가 뿌린 증오의 불씨, 전 세계 네오나치 광풍 부르나

중앙일보 2017.09.02 01:00 종합 17면 지면보기
심상찮은 미국발 인종차별 테러·시위
지난달 25일 미국 버지나아주 알링턴의 쇼핑센터에서 열린 미국나치당 설립자 조지 링컨 로크웰의 추도식. 나치 갈로리십자가가 든 당기가 보인다.[유튜브 캡처]

지난달 25일 미국 버지나아주 알링턴의 쇼핑센터에서 열린 미국나치당 설립자 조지 링컨 로크웰의 추도식. 나치 갈로리십자가가 든 당기가 보인다.[유튜브 캡처]

지난달 25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쇼핑센터 앞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가 선명한 완장을 찬 남녀 6명이 모였다. 이들은 하켄크로이츠가 커다랗게 그려진 당기를 보란 듯이 들고 미국 나치당 창립자 조지 링컨 로크웰의 50주기 추도식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치를 꺾은 미국에서 대낮에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지난달 11~12일의 샬러츠빌 행진, 17일 보스턴 행진 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대놓고 거리에서 집단행동을 벌인 직후여서 이 사건은 더욱 충격으로 와닿는다.

‘미국 우선’ 외쳐 대통령 된 트럼프
백인우월주의 폭력 양비론 방관

2018년 월드컵 열릴 러시아 축구장
나치 구호, 인종비하 야유 난무

독일은 실체 숨긴 네오나치 기승
몽골엔 동성애·한국인 혐오 정당

 
행진도 문제다. 명분은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던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에 대한 항의였지만 실제로는 누가 봐도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실력 행사다. 이들은 맞불시위에 나선 반인종차별 시위대를 공격해 유혈극을 빚었다. 더 큰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비난하지 않고 ‘양비론’을 펼쳤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새로운 국가적 논쟁으로 타오르며 분열이 가속하고 있다. 본질은 1960년대 민권운동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가 신장하면서 물밑으로 숨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12월 남군 장교 출신을 중심으로 결성된 인종차별주의자 단체 KKK 단이 샬러츠빌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나치당 설립자 조지 링컨 로크웰은 네오 나치즘의 세계 확산이라는 헛된 꿈을 꿨다. [AP=연합뉴스]

미국 나치당 설립자 조지 링컨 로크웰은 네오 나치즘의 세계 확산이라는 헛된 꿈을 꿨다. [AP=연합뉴스]

미국 언론에선 백인우월주의자·백인지상주의자를 ‘대안 우파(alt-right)’로 부른다. 합리적이고 온정적인 주류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이들은 극우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소수민족·동성애자·여성·장애인·이민자·무슬림에 대한 차별·혐오·폭력을 조장한다. 대안 우파들은 민주당을 비롯한 미국 좌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며 다수인 백인을 차별하고 소수민족을 우대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억압받는’ 백인이 원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외친다. 백인들이 다시 미국을 이끄는 ‘백인 내셔널리즘’을 부르짖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이런 대안 우파들의 입맛에 딱 맞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선거 구호도 ‘백인 우선’으로 들렸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백인우월주의가 인종차별·인종분리와 외국인 혐오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자와 무슬림에게도 화살을 겨눈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실업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반이민주의’다.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무슬림은 이민은 물론 입국도 막아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편다. ‘자국문화보호주의’다. 무슬림 전체를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는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대안 우파들은 동맹국의 해외 주둔과 국제 문제 개입에 반대하는 ‘고립주의’와 외국 상품으로부터 국내 시장을 지키는 ‘보호무역주의’도 내세운다. 트럼프의 지난 선거 공약이고 동맹인 한국과 주요 무역 상대인 중국을 압박하는 배경이다.
 
  2008년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에서 열린 네오나치 시위.[유튜브 캡처]

2008년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에서 열린 네오나치 시위.[유튜브 캡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안 우파에 대한 트럼프의 시대착오적인 언행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극우 성향의 네오나치들에게 돗자리를 깔아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우려되는 점은 2018년 FIFA 월드컵 개최국인 러시아다. 경기장은 인종차별 구호의 배설장이 됐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공정경기 모니터링팀은 “러시아 축구경기장에서 나치 구호를 외치는 것은 일반적이다. 아프리카계 선수를 야유하는 인종차별적인 구호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아프리카계 선수는 ‘원숭이’를 연호하는 관객들로부터 고통당하기 일쑤다. 러시아 스킨헤드들의 반동성애 폭력도 심각하다. 2015년 5월 3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동성애자 행진은 얼룩무늬 군복 차림의 네오나치들 폭력으로 난장판이 됐다. 참가자들은 곳곳에서 나치식 경례를 했다. 반동성애는 네오나치의 주요 성향 중 하나다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린 네오나치 행진. [유튜브 캡처]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린 네오나치 행진. [유튜브 캡처]

 
독일 정보 당국에 따르면 독일에는 2만6000여 명의 우익 극단주의자가 있으며 이 중 6000명은 네오나치로 분류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상당수 국가에선 나치 추종이나 홀로코스트 부인, 인종차별·반유대주의는 정치적·사회적 비난은 물론 처벌까지 받는다. AP통신에 따르면 8월 초 중국인 관광객 두 명이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사당 앞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며 사진을 찍다 ‘위헌적인 조직 관련 상징물 사용’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을 정도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 때문에 극우정당이나 조직을 불법화할 순 없다. 이에 따라 2104년 10월 집회를 시작한 ‘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PEGIDA)’이라는 단체는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신들을 선량한 단체로 포장했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이슬람공포증·반이민주의·인종차별주의·외국인혐오주의가 짙게 깔렸지만 네오나치로 비난받을까 봐 ‘위장 전술’을 쓴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부 네오나치는 정계로 진출했다. 그리스에선 인종차별·반소수민족·반동성애를 내세운 황금새벽당이 현재 의회에서 300석 중 18석, 유럽의회에서 그리스 몫 21석 중 3석을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네오나치 정당이 당당하게 활동 중이다. ‘모든 우크라이나 연합 스보보다(자유)’는 4~5위 정당을 유지하면서 각료까지 배출했지만 나치친위대 사단 마크를 당 로고로 삼고 있다. 폴란드에선 ‘폴란드 국가 재생’이라는 정당이 의회 진출을 노린다. 심지어 몽골에도 하켄크로이츠를 당 로고에 삽입한 정당이 등장해 동성애자와 중국인·한국인을 응징하고 몽골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주장한다.
 
네오나치 활동을 원천 봉쇄하는 나라도 있다.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가 여러 차례 테러를 벌였던 벨기에엔 ‘피, 흙, 명예와 충성’이라는 네오나치 단체가 활동 중이지만 2003년 만들어진 반테러법에 의해 주요 구성원들이 체포되면서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유럽 기준으로 하면 재일 한국인이나 한국인에 대해 증오 시위를 벌이는 일본의 우익도 네오나치로 분류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안 우파의 인종차별주의적 행진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전 세계 네오나치들이 활개 칠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의 수호자여야 할 미국 대통령이 방관자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칫 글로벌 네오나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까 세계가 걱정하고 있다.
 
[S BOX] 백인 내셔널리즘으로 위장한 네오나치,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 조장
민족 우선주의, 특정 종족 우월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반유대주의, 장애인 차별 등등 대안 우파의 주장과 언동은 나치를 떠오르게 한다. 대공황으로 경제가 나빠진 가운데 잘사는 ‘타민족’에 대한 질시와 혐오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나타난 게 1930년대 나치즘이다. 당시 ‘타민족’은 유대인이었다. 나치는 아리아 인종의 순수 혈통과 우월성을 보존한다며 유대인과 집시, 그리고 장애인의 ‘박멸’에 나섰다.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정치적 반대파도 제거 대상이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비롯한 이념적 다양성을 경계했으며 유대인들이 생존을 위해 활용할 우려가 있다며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에도 회의적이었다. 나치는 원래 대기업·물질 만능주의·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로 시작했다가 인종차별주의로 변화했다. 이들은 ‘민족이 우선이다’를 외치며 전 국민에게 복종을 강요했다. 나치의 ‘민족’을 ‘백인’으로, ‘유대인’을 ‘멕시코인’이나 ‘무슬림’으로 각각 바꾸면 대안 우파의 주장이나 진배없다. 남녀평등·여성존중에 반발하고 낙태반대 등 반페미니즘 운동에 나서는 것도 ‘네오나치’와 일맥상통한다. ‘네오나치’인 대안 우파는 비난·처벌을 우려해 ‘백인 내셔널리즘’으로 교묘히 위장했을 뿐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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