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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남이 쉽게 우리가 되는 인터넷 시대, 먼저 손 내미는 용기가 필요해

중앙일보 2017.09.02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인터넷에서 아는 사람들은 아는 유명한 칠레 말이 있다.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남쪽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 제도 원주민인 야간족이 썼던 말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기네스북에 ‘세상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로 등재돼 있다. ‘서로가 함께 무엇인가 시작하고 싶지만 내가 먼저 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해 상대방이 먼저 해 주기를 바라는 상황, 미묘한 분위기’란 뜻이다.
 
이 애매모호한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조장 하실 분’이라는 의외의 단어와 대비되며 화제가 됐다. 학교 조별 과제를 할 때 조장은 조원들을 채근해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책임은 있지만 성과는 모든 조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야말로 서로 해 줬으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조장을 호선할 때 서로 맡기 싫어하는 그 애매한 분위기를 바로 이 ‘마밀라피나타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별 과제’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모양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무능한 조원, 개념 없는 조원, 과제는 참여하지 않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조원,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조원 등 수많은 부정적 사례가 있다. ‘모두가 함께 잘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라는 고민과 탄식은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 ‘부실한 교육 감독을 하는 교수들의 책임’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협업 과정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트롤’이라고 한다. 트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또 초심자를 낚시질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좀 엉뚱하지만 ‘컨트롤’에서 ‘컨’이 빠진 통제 불능 같은 이미지라는 설도 있다. 반면 뛰어난 능력으로 혼자 중요한 역할을 해 조별 과제를 해결하는 영웅은 ‘하드 캐리’라고 한다. 열심히 이끈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들은 대부분 게임에서 온 것이다. 온라인게임은 낯선 사람들과 팀을 짜서 아군과 적군을 나눠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는 낯선 사람과 쉽게 만나고 함께 일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원래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내가 속한 내집단과 낯선 사람이 속한 외집단을 배타적으로 구분해 온 특성이 있다. ‘우리’와 ‘남’은 엄격히 구분됐다. 그런데 온라인을 통해 만남과 헤어짐이 쉬워지다 보니 ‘우리’라는 개념은 사실상 ‘임시’ 개념이 됐고 ‘우리’와 ‘남’의 구분도 모호해진 것이다. ‘우리’ 속 ‘친구’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친구에도 ‘절친’이나 ‘베프(베스트 프렌드)’라는 등급이 생기는가 하면 낮은 단계의 친구는 ‘겉친구’ ‘밥친구’라는 말로 구분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친구’라는 등급으로 통일하는데 친구가 되기 전의 사람은 ‘알 수도 있는 사람(acquaintance)’으로 추천한다. ‘알 수도 있는 사람’은 친구 이전의 등급인 셈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온라인활동을 하면서 낯선 이들과 협력하고 배신에 대응하는 법을 배운다.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나와 남과의 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관계의 경험을 한다. 이것은 나중에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독립형 경제활동 긱이코노미(Gigeconomy)에서 살아가는 지식이 될 것이다.
 
‘마밀라피나타파이’가 처음 알려진 것은 유튜브 영화 ‘라이프 인 어 데이’에서였다. 이 영화는 2010년 7월 24일 하루 동안 전 세계 197개국 8만 명이 찍은 일상을 모은 것이다. 인종과 국가가 다른 낯선 세계인이 같은 날 하나의 일상을 보여 주면서 삶과 행복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임을 알려 주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마밀라피나타파이’를 소개한 여성은 뜻을 설명하며 이런 예를 든다. ‘파티에서 서로 맘에 든 남녀가 어느 쪽도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두 부족이 평화를 원하지만 서로 손을 내밀지 않는 상황’이다.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행복을 만드는 새로운 관계의 시대. 지금은 나부터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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