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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숙자서 할리우드 뷰티 전문가로 … 죽기살기로 하면 안 될 일 없죠

중앙일보 2017.09.02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톱 메이크업 아티스트 재미동포 테일러 장 바바이안
할리우드 스타들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약하는 테일러 장 바바이안. 불우했던 과거를 긍정의 힘으로 바꾸면서 손꼽히는 뷰티 전문가가 됐다. [박종근 기자]

할리우드 스타들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약하는 테일러 장 바바이안. 불우했던 과거를 긍정의 힘으로 바꾸면서 손꼽히는 뷰티 전문가가 됐다. [박종근 기자]

‘불가능은 없다(Anything Possible).’ 냉소 가득한 이 현실에서는 낯설기까지한 긍정의 한마디를 인생에 걸쳐 보여주는 이가 있다. 재미동포이자 할리우드 톱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테일러 장 바바이안(43·Taylor Chang Babaian)이다.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간 그는 ‘10대 노숙자’ 꼬리표를 떼버리고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뷰티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오노 요코, 폴라 압둘, 카니예 웨스트, 김윤진 등 톱스타들와 셀레브리티(셀럽)들이 그의 고객이다. 지금은 UCLA에서 인류학을 공부 중이다. 졸업 논문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8월 24일 중앙일보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14세 때 집 나와 노숙생활
마약에 빠져 죽는 아이들 보고
1년 반 만에 아버지 찾아 귀가

23세 때 스타 메이크업에 관심
유명인 연결 대행사 7개월 두드려
무급으로 3년 일한 뒤 전속 계약

도전은 계속 된다
폴라 압둘, 김윤진 등 스타들 고객
인류학 공부 뒤 MBA 진학 생각

 
어린 시절 얘기를 해달라.
“부모님은 미국에 정착하느라 바빴고, 힘들었고, 그래서 싸웠고, 결국 헤어졌다. 큰 오빠와 여동생은 어머니와, 나와 작은 오빠는 아버지와 살았는데 열네 살에 집을 나와 노숙을 했다.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집이 거리보다 안전하지 않았다. 학교도 가지 않고 친구네 집 옷장, 24시간 도넛 가게나 세탁방 같은 데서 쪽잠을 자며 일년 반을 보냈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나.
“어느 날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었다. 주변 아이들이 마약에 빠져 죽기도 했다.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고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시애틀로 이사를 했는데 책상은커녕 가구도 제대로 없는 집에서 종이박스를 놓고 공부했다. 모자란 학점을 메운 것뿐 아니라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형편상 아쉽게도 인근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그게 아쉬워서 뒤늦게 2016년에 UCLA에 편입했다.”
 
비교적 빨리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왔다.
“열여덟 살에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늘 두세 개씩 했다. 그 중 하나가 체육관 안내데스크였는데 거기서 남편을 만났다. 스무 살에 결혼·임신을, 스물 두 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두 번 다 출산 휴가를 3주만 쉴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그 사이 미용실에 스카우트 돼 각종 서류를 다루는 매니저 일을 했다.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어떻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됐나.
“미용실에서 고객 서비스로 하는 화장 수업을 들었다. 강사가 내가 하는 걸 보더니 재능이 보인다고 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럴 법도 했다. 어릴 적 ‘쌍꺼풀이 없어 못생겼다’는 말을 늘 어머니에게 들었다. 그래서 화장을 열심히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고 마음 먹으면서 결심한 게 있었다. 당시 읽던 책에 ‘사람들은 똑같은 서비스에 돈을 내지 않는다’는 내용이 머리에 박혔다. 그래서 화장을 하더라도 뭔가 다른 걸 하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스타들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그때가 스물세 살이었다.”
 
누가 도와줬나.
“도와줄 사람이 있을 턱이 있나. 일단 잡지 기자들한테 e메일을 보내서 물어봤다. 클루티에르 레믹스(Cloutier Remix)라는 에이전시에 들어가야 한다더라. 전속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두고 유명인들과 연결을 해주는 곳이었다. 내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았다. 그래도 계속 찾아가고 또 연락했다. 일곱 달 만에 연락이 왔다. 무급으로 해 볼 생각이 있냐고. 고민 없이 응했다. 그 이후로도 돈을 받았다 안 받았다를 반복했다. 낮에 미용실에서 일을 하고, 밤에 광고나 화보 촬영을 하면서 잠을 1시간 만 자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버텼더니 3년 만에야 전속이 됐다. 현재 소속사가 바로 여기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나.
“인생을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자, 이기려면 어떡할거냐. 죽을 거냐 아니면 살 거냐. 살려면 어떻게 할거냐. 2005년 처음 책을 쓸 때도 그랬다. 출판 계약을 맺고 사진도 찍고 글도 써야 하는데 오른팔을 다쳐 쓸 수가 없었다. 출간을 미룰 수도 없어서 그냥 왼손 쓰는 연습을 죽기 살기로 했다.”
 
어려웠던 과거를 지우고 싶진 않았나.
“아니. 과거는 강력한 힘이다. 배고파서 기운이 떨어질 땐 닷새나 못 먹었던 경험을, 너무 추울 땐 건물 계단의 빈 공간에서 자던 때를 떠올리곤 한다.”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은.
“솔직함이다. 나는 셀럽 화장을 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톱스타일수록 오히려 이런 것에 까탈스럽지가 않다. 오노 요코도 그렇고, 김윤진도 참 쿨한 성격이다.”
 
왜 인류학을 공부하나.
“인류학은 세대와 인종을 떠나 인간의 본성을 파고든다. 미를 추구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여자들이 예뻐 보이고 싶어하는데 좋은 피부는 우월한 유전자라는 경쟁력을, 대칭을 이룬 얼굴은 착하고 솔직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졸업 후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할 생각이다. 세포라(글로벌 화장품 전문 편집매장)가 IT 기술로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는 것처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첨단의 화장 사업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불가능한 건 없다고.”
 
[S BOX] 오노 요코와 11년째 인연 … 아들 션 레논 콘서트 때도 동행
할리우드 톱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테일러 장 바바이안은 많은 셀레브리티 고객 중에서도 특히 존 레논의 부인이자 아티스트인 오노 요코(84·사진)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지금도 오노가 로스앤젤레스에 올 때면 바바이안을 꼭 만나고 갈 정도로 끈끈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1년 전이다. 첫인상부터 강렬했단다. “오노의 예약을 받고 가는데 어쩐지 두렵기도 하고 평소에 갖고 있던 이미지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긴장을 했죠. 그런데 몇 마디를 나눠 보니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오노는 바바이안이 『동양의 얼굴(Asian Faces)』이라는 책을 처음 낼 때 짧은 서문도 써 줬다. “많은 아시아 여성들이 피부 표현과 눈화장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 책이 여러 가지 실수로부터 독자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강력한 추천사였다.
 
바바이안은 오노에 대한 또 다른 특별한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2014년 그의 아들 션 레논이 어머니를 위해 콘서트를 열었을 때 행사에 동행했다. 그러다 리허설까지도 함께했다. 음악이 흐르자 레이디 가가가 피아노에 올라 춤을 추기 시작했고, 션은 베이스를 연주했다. 그리고 오노가 분위기를 맞추는 모습이 한 눈에 펼쳐졌다. “그런 대단한 장면을 본 관중이 오직 저였다는 게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아요.”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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