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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6) “밤에는 올빼미 손님, 낮에는 말벌손님~”

중앙일보 2017.09.01 12:00
해가 일찍 지는 산 속이라 어둠도 빠르다. 짐승들과 대결을 벌여야 하는 이곳에서는 작은 등 하나도 큰 도움이 된다. [사진 조민호]

해가 일찍 지는 산 속이라 어둠도 빠르다. 짐승들과 대결을 벌여야 하는 이곳에서는 작은 등 하나도 큰 도움이 된다. [사진 조민호]

 
처음엔 밤손님이 잦았다. 고라니와 멧돼지는 오래 비어 있던 포월침두를 여전히 자기 영역으로 알고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와 마당과 밭을 파헤쳐 놓고 가고는 했다. 
 
어둠이 무서워 밤새 마당 쪽 등을 켜둔 채 자기도 하고, 밤마다 산이 쩌렁쩌렁 울리게 비틀즈를 들어서인지 얼마 안 가 밤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내가 그들의 놀이터를 빼앗은 셈이 되어 조금 미안했다.
 
그 무렵 어느 날 애써 심어 놓은 모종을 멧돼지와 고라니가 다 뜯어 먹어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김 사장님이 한마디 했다. “시골에서는 나눠 먹는다고 생각해야 돼예. 반은 주고 반만 먹으면 돼예.” 
 
그렇구나. 내가 가꿨으니, 내가 벌었으니, 내 입으로 다 들어와야 돼~ 하고 살았던 나 아니던가. 나보다 먼저 이 땅에 터 잡고 있던 놈들에게 작물의 절반쯤은 당연히 세경으로 내놔야지. 시골살이의 넉넉함이 느껴졌다. 우리 도시살이들은 따라갈 수 없는 여유와 철학~
 
 
올빼미의 만행 
 
 
몇일동안 계속 한 마리씩 없어지던 닭. 프리랜서 김성태

몇일동안 계속 한 마리씩 없어지던 닭. 프리랜서 김성태

 
그런 여유와 철학을 가진 김 사장님이 마당에 토종닭 열 마리를 풀어먹였다. 달걀도 얻어먹고, 잘 자라면 힘 달리는 삼복에 몸보신 할 목적으로. 그런데 어느 날 마당에 노는 닭을 세어보니 한 마리가 비어 어디 숨어 있겠지 했단다. 또 며칠 후 다시 세어보니 다시 한 마리가 비고, 또 비고, 또 비고…. 밤마다 집 뒤 비계산에서 울어 대던 올빼미 짓이 틀림없는 거라. 
 
마침내 마당에 닭이 한 마리도 안 남게 된 날 아침 사모님에게 “내 경찰서 댕겨올끼라. 맡겨논 사냥총 찾으러 간다. 내 이 올빼미 새끼를 마 콱 쏴 직이삘끼다. 반만 잡아 먹지 우째 한 마리도 안 남가 놓고. 씩씩~” 했다 한다. “워워~ 김 사장님, 참으세요. 나눠 먹는 거라면서요~” ㅋㅋ
 
친구들이 내려오면 벌레 때문에 힘들어 한다. 제법 오래 시골생활을 버텨낸 내가 한마디 했다. “시골에서는 벌레랑 같이 산다고 생각해야 돼. 무서워 하는 건 네 마음이지, 벌레가 아니란다. 벌레가 오히려 널 무서워 할 걸.”  
 
 
커다란 날개에서는 선풍기 소리 보다 더 큰 소리가 난다. 감히 말벌에게 카메라를 갖다 댈 용기가 없어 사진을 빌린다. 프리랜서 김성태

커다란 날개에서는 선풍기 소리 보다 더 큰 소리가 난다. 감히 말벌에게 카메라를 갖다 댈 용기가 없어 사진을 빌린다. 프리랜서 김성태

 
집 안에 붕~ 붕~ 말벌이 날아다닌 지 몇 주 됐다. 집 밖의 출입구는 발견했는데, 집 안으로 들어오는 구멍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흙벽과 나무 기둥 사이에 집을 지은 것이 틀림없는데 밖의 출입구를 막아버리면 놈들이 한꺼번에 집안으로 들어올 것이 분명해 막을 수도 없다. 
 
다행히 한 마리씩만 차례차례 들어와 파리채로 1:1 대결을 벌여 잡은 말벌이 일주일에 백 마리가 넘는다. 언제 1패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무서워 죽겠다.
 
“벌레랑 같이 사는 거라며? 걔들이 더 무서워 한다며? 같이 살지 왜 다 때려 잡는 거야?” 친구들의 비아냥이 귓가에 붕~ 붕~ 거린다. ㅠㅠ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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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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