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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초권력자는 왜 없나

중앙일보 2017.09.01 02:2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후배 A는 금융회사 사장이다. 나는 그의 연봉이 얼마인지 모른다. 몇 개 회사를 돌아가며 10여 년 사장을 했으니 꽤 될 거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 4만 명(0.08%)밖에 없다는 연봉 5억원 이상 초고소득자였던 모양이다. 하루는 많이 흥분해서 말을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고소득자·초대기업에 세금을 더 물리겠다”고 말하자 “증세 없다”던 정부가 ‘부자 증세’로 확 방향을 틀었던 때다.
 

초대기업 명예과세처럼
초권력도 존경받게 해야

“세율이 40%에서 42%로 되면 단순히 2%포인트 올리는 게 아닙니다. 각종 공제와 건강보험료 등 실효세율을 따지면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겁니다. 소득의 반은 특별한 의미입니다. 내가 번 돈에서 정부가 내 몫보다 많은 돈을 세금으로 떼가는 겁니다. 고소득자들의 임계점이 소득의 반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때부터 분노하게 됩니다. 왜 프랑스의 고소득자들이 일제히 고국을 떠났는지, 이 정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A는 몇 마디 더했는데, 주로 이런 말이었다. “국민 절반이 세금을 안 내는데 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나” “그렇다고 누구 하나 고소득자를 존경하는 사회도 아니잖은가” “고소득자가 되기 위해 들인 30여 년의 노력과 열정, 격무는 아무 가치가 없는 건가.”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지만, 솔직히 그리 공감하지는 않았다. 5억원이란 연봉은 평생 내겐 꿈도 못 꿔본 숫자고, 앞으로도 언감생심 욕심낼 금액이 아닌 데다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내심 “많이 벌면 많이 낼 수도 있지”라며 적당히 좌파식 편가르기에 묻어가는 ‘꼬인 심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작 내가 한 말이라곤 “신문에 기고 한번 하지?”였다. A는 “직장 좀 더 다녀야 한다”며 대뜸 손사래를 쳤다.
 
아마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그 놈의 ‘초’자가 은근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하기야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초고소득자·초대기업’을 말했을 때도 조금 생뚱맞다고는 생각했다. 그냥 고소득자·대기업 하면 덜 부자스럽게 들릴까 봐 그랬나? 그렇게까지 부자와 서민, 편을 가르고 싶었나? 여기에 “서민 증세는 이 정부 내에 결코 없다”와 ‘명예·존경 과세’란 말이 따라붙는 걸 보며 기분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했다.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주가 아니라 주주·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이 준다. 그런데 거기에 왜 명예·존경이 붙나. 그냥 ‘부자세’라며 걷기에는 계면쩍었다는 말인가.
 
나는 금력과 권력을 가장 인간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금력 앞에 ‘초’자를 붙이는 속내엔 ‘부자=죄인’이란 반자본주의적 평균주의가 깔려 있다. 그래놓고 ‘명예’ ‘존경’을 갖다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이요, 뺨치고 어르기다. 물론 정부·여당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가진 자가 좀 더 베풀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그 좋은 ‘초’자, 권력에도 붙이자. ‘존경’ ‘명예’도 기꺼이 헌정하자. 초대기업·초고소득자처럼 초권력자에게도 ‘권력 재분배’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하자. 금력에는 잔뜩 명예·존경의 찬사를 붙이면서 권력에는 아무 대우도 안 해줘서야 되겠나. 본인들도 아주 명예로워 할 것이다.
 
우선 중앙부처 1급 이상은 ‘초권력자’에 집어넣자. 음주 운전은 10년간 공직 금지, 갑질 한 번에 공직 박탈, 민원 무시는 1년 연봉 삭감 같은 ‘특별명예권력형벌제’를 도입하자. 3선 이상 국회의원이나 여야 대표에겐 특별히 초초를 붙여주자. 막말 한 번이면 영구 선출직 박탈 같은 명예로운 징벌제를 만들자. 물론 대통령은 초초초, 더 특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민에게 존경·명예를 붙이는 일은 이 정부 내에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게 이 정부의 철학 아니던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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