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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1만5000개 폰번호 중 범인 것 1개 … 15년전 살인사건 푼 단서

중앙일보 2017.09.01 01:27 종합 12면 지면보기
2002년 5월 31일 부산시 강서구의 바다에 시체가 담긴 마대자루가 떠올랐다. 열흘 전 실종된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 태양다방 종업원 Y씨(당시 21세)였다. 부산경찰청은 Y씨의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한 양모(46, 범행 당시 31세)씨, 예금 인출에 가담한 오모(38·여, 범행 당시 23세)씨와 이모(41·여, 범행 당시 26세)씨 등 모두 3명을 공개 수배했다.
 
당시 은행 예금인출기 폐쇄회로TV(CCTV)에 용의자들의 얼굴이 찍혔지만 추가 신상 정보가 전무해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전단지 수만 장을 뿌리고 공개수배 방송에 사건이 방영됐지만 결정적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 캐비닛 속에 던져졌던 이 사건은 2015년 9월 부산경찰청에 장기미제수사팀이 별도로 꾸려지면서 ‘태양다방 종업원 살인사건’이란 이름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오리 닮은 특이 외모에도 못 잡았지만

오리 닮은 특이 외모에도 못 잡았지만

 
수사팀은 2002년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 Y씨의 계좌에서 두 차례 돈이 인출된 시점에 은행 지점 주변 기지국에서 이뤄진 통화에 주목하고, 이 은행 지점 주변에서 당시 이뤄진 불특정 다수인들의 통화 내역을 확보했다. 수사팀 손에 1만5000개의 휴대전화 번호가 들어왔다. 수사팀은 1만5000개 중에 범인들의 번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추가 단서를 찾기 위해 2016년 2월 부산경찰청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기로 했다. 언론에 피의자 양씨와 공범 2명의 얼굴을 다시 공개했다. 결국 두 달 만에 공범인 이씨를 안다는 결정적 제보가 들어왔다. 수사팀은 그해 4월 이씨뿐 아니라 오씨를 붙잡아 2002년 당시 휴대전화 번호를 캐물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사팀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2002년 당시 이씨와 오씨의 주민등록번호로 거래된 금융회사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1만5000개 번호 중에서 오씨의 휴대전화 번호로 통화한 내역이 딱 1건 있었다. 살인사건 주범 양씨의 휴대전화 번호였다.
 
하지만 살인사건 발생 이후 14년이나 지나 양씨의 휴대전화 번호 가입자 정보가 없었다. 이동통신사 3곳을 모두 찾아갔지만 계약 해지 5년이 지나면 가입자 정보를 폐기해 남은 정보가 없다고 했다.
 
수사팀은 다시 영장을 발부받아 양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된 금융거래와 인터넷 홈페이지 개인정보를 뒤졌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지난해 8월부터 꼬박 1년간 추적작업 끝에 마침내 주범 양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냈다.
인터넷 기록까지 뒤져 주민번호 알아내

인터넷 기록까지 뒤져 주민번호 알아내

 
지난 21일 공장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양씨를 집 앞에서 검거했다. CCTV 화면 속 얼굴 그대로였다. 수사팀 사이에서 ‘오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처럼 입이 툭 튀어나왔고, 귀는 당나귀처럼 삐쭉 솟아 있었다.
 
양씨가 범행을 부인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CCTV 화면 속 얼굴과 양씨의 현재 모습이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받아냈다. 은행 인출내역서에 쓴 필적이 양씨 것과 일치한다는 증거도 확보했다.
 
부산경찰청은 강도살인 혐의로 지난달 23일 구속한 양씨를 30일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팀 김중갑 형사는 “억울하게 숨진 다방 종업원 Y씨의 한을 15년 뒤에라도 풀어줘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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