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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직격 인터뷰] “탈북자를 수구집단의 외판원 취급 말아야”

중앙일보 2017.09.01 01:00 종합 27면 지면보기
탈북자 대부 안찬일 박사가 본 ‘3만 명 탈북 정착 시대’ 명암
탈북 여성 임지현씨의 입북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북한의 유인 납치냐, 자진 월북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데다 그녀의 행적을 놓고는 온갖 선정적 추측이 쏟아진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탈북자를 동원한 문제를 두고도 논쟁이 한창이다. 팀장 역할을 한 탈북 단체장을 향해 격한 비난이 쏟아지지만 ‘단순 가담’ 수준의 탈북자에게는 “국정원의 강요를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란 동정론도 나온다. 지난해 말 3만 명을 돌파한 국내 정착 탈북자 문제가 풀기 힘든 복합방정식으로 다가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탈북자 1호 박사인 안찬일(63)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를 만나 실상과 해법을 들어봤다. 보다 생생한 실태 파악을 위해 2년 전 한국에 정착한 뒤 최근 방송 활동을 시작한 함북 출신 탈북 여성 김은실(23)씨가 함께했다.

‘탈북 미녀’ TV 출연자 노린
북 유인 입북 대책 서둘러야
‘탈북자 비례의원’ 없애버린
박근혜 정부에 실망감 크다

댓글사건에 실컷 써먹더니
‘적폐 탈북자’로 낙인찍어
전단 살포는 비공개 바람직
탈북재단 우리에게 맡겨야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오른쪽)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앞에서 탈북 여성 김은실씨와 북녘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은 안 총재가 38년 전 탈북, 귀순했을 때 서울시민 환영대회가 열렸던 장소다. 안 총재는 “청와대 습격을 위해 남파됐다 체포된 김신조씨가 꽃다발을 줬다”며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첫길을 열어준 뜻깊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오른쪽)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앞에서 탈북 여성 김은실씨와 북녘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은 안 총재가 38년 전 탈북, 귀순했을 때 서울시민 환영대회가 열렸던 장소다. 안 총재는 “청와대 습격을 위해 남파됐다 체포된 김신조씨가 꽃다발을 줬다”며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첫길을 열어준 뜻깊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국내 종편 TV의 ‘탈북 미녀’ 프로에서 인기를 끌던 임지현(25·본명 전혜성)씨가 지난봄 갑자기 사라졌다가 7월 북한 대남 선전 영상에 등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19세 때 탈북해 중국에 숨어 살던 임씨는 같은 처지의 남성과 동거하다 혼자 한국에 왔다. 이후 탈북 브로커 역할을 하던 이 남성이 북한 보위성에 체포당했다. 풀려나기 위한 거래가 있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임지현의 존재를 파악한 북한 공안당국이 유인 납치 공작을 벌였는데 임씨가 걸려든 것으로 파악됐다.”
 
경위야 어찌 됐건 한국을 떠나 스스로 중국으로 간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 남성이 임씨에게 ‘중국에서 벗방(‘벗는 방송’의 줄임말로 음란영상을 지칭하는 은어)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꾀었다고 한다.”
 
북한의 선전공세가 만만치 않다. 8월에도 두 차례나 임씨를 ‘우리민족끼리’ TV에 출연시켜 대남 비난에 나섰다. 이유가 있나.
“탈북 여성들이 집단 출연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TV 프로그램에 북한은 골머리를 앓아 왔다. 올 초 김정은이 출연자 중 몇 명을 잡아오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얘기도 돌았다. 북한이 임지현이란 대어를 낚은 셈이다. 한국에 있는 다른 탈북 출연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본다.”
 
일각에선 자진 입북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임씨의 북한 TV 인터뷰 자체가 강요된 거짓이다. 여기서 방송 출연 등으로 한 달에 700만~800만원을 벌었다. 월북하려 작정했다면 타던 외제 승용차 등을 처분하고 갔을 것이다. 1000달러도 북에선 큰돈이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한다.”
 
임씨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는데. 그게 가능한가.
“자유세계를 맛본 탈북자가 북으로 돌아가는 건 감옥에서 나왔다가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격이다. 삼엄함 감시가 있겠지만 느슨해지는 1~2년 후에 다시 탈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 재탈북 사례가 적지 않다.”
 
임씨는 한국에서 TV 출연을 할 때 방송작가로부터 거짓 이야기를 하라고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는데.
“나도 한때 출연해 봤지만 그렇게 막무가내로 거짓을 말하게 하지 않는다. 물론 ‘소똥에서 콩알을 빼 먹었다’는 식의 북한 비하는 탈북자에게도 수치감이 들게 하고, 우리 국민에게 잘못된 대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몇몇 뜻있는 탈북 인사들과 새로운 포맷의 방송을 모 케이블 방송 측과 기획 중이다.” (이 대목에서 김은실씨는 “작가들이 사전 인터뷰에서 얘기한 걸 토대로 대본을 쓴다. 물론 살을 붙인다. 우리가 투박하게 말한 걸 예쁘게 표현해 준다고 보면 된다”고 보충 설명했다. 김씨는 “방송 녹화 때 5~6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여성들에겐 힘들지만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이다. ‘연예인병에 걸렸다’거나 ‘조국(북한)을 팔아 쉽게 돈 번다’는 비난도 따르지만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또 “임지현의 주장처럼 강제로 앉아 있게 하는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공작에 관계당국도 속수무책이다. 해외여행을 원천 봉쇄할 수도 없지 않나.
“많은 탈북자가 탈북 루트였던 중국 옌볜 등을 한번 가보고 싶어 한다.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대리만족이랄까. 여권 발급을 막았다가는 반발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제2, 제3의 임지현을 만들려고 집요하게 노력할 것이다. 가족 상봉 등을 미끼로 유인해도 절대 북·중 변경에 가면 안 된다. 타깃이 될 TV 출연자 등을 중심으로 자제시키고 위험하면 여행을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 대선 때 탈북자 사회가 후보 지지를 둘러싸고 분열되는 양상을 빚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3000명 탈북자가 이민 가겠다’는 극단적 선언도 있었는데.
“(웃음) 이민 간 사람 하나 없고 다들 잘 살고 있다. 하지만 탈북단체 등을 중심으로 균열이 생긴 건 안타깝다. 탈북자 사회의 책임이 크지만 정치권도 이들을 갈라놓는 데 앞장섰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그게 좀 심했다.”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부가 탈북자들을 잘 챙긴 것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 말 탈북자 몫으로 조명철씨에게 국회 비례대표를 줬는데, 박근혜 정부 때인 20대 국회에서는 슬그머니 빼버렸다. 당시 탈북인사 10여 명이 400만원씩의 등록비를 마련해 신청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자 ‘최순실에게 잘 보일 걸 그랬다’는 비아냥이 우리 내부에서 나왔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 몸담은 건가.
“통일정책자문단 단장을 맡았다. 두 동강 난 탈북자들을 하나로 묶고 새 정부에 대한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하겠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탈북자 단체가 개입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탈북자를 정보기관이 실컷 활용해 먹고, 문제가 되니 나 몰라라 하며 ‘적폐 탈북자’로 만들어 버렸다. ‘노루 때리는 몽둥이 3년 우려먹는다’는 말처럼 우리를 써먹었더라. 애국하는 길이라고 해서 가담했는데, 최근 문제가 되면서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야 했다고 한다. 물론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여론 조작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한 건 잘못이다. 하지만 절대적 권력을 쥔 국정원에서 제안이나 요구를 하면 거절하기 어려운 게 우리 탈북자의 현실이다. 국정원 간부 등이 돈을 다 떼먹고 탈북자들에겐 ‘댓글 10개 다는 데 5만원’ 정도 쥐여줬다고 들었다.”
 
탈북자 단체 하면 또 하나 논란이 이는 게 대북 전단 문제다.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지나치게 북한을 자극하고 화해·협력을 저해하는 내용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쇼하듯 풍선을 날렸다가 바람 방향이 맞지 않아 남측 지역에 떨어지는 일도 벌어진다. 몇몇 탈북 단체장이 투사적 기질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날짜·장소를 공개해 언론 카메라가 쫓아다니는 걸로 희열을 느껴서야 일이 되겠나.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소식을 전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소문 없이 했으면 좋겠다.”
 
대북 전단 문제도 정부 당국이나 기관이 관여하나.
“탈북자들을 실속 없는 ‘안보장사’에 그만 내세웠으면 한다. 우리를 수구집단의 외판원 취급하며 정치판이나 세몰이식 군중집회에 이용해 온 게 사실 아니냐. 만약 한국에서 북으로 3만 명이 월북했다면 북한은 이들을 활용해 정교한 대남전술을 짤 것이다. 탈북자를 ‘먼저 온 통일’이라 치켜세우며 립 서비스만 하지 말고 정부가 진정성 있는 역할을 해달라.”
 
국내 정착 탈북자의 대북 송금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재북 가족을 위해 죽기살기로 일해 얼마의 돈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다. 한반도형 프라이카우프(Freikauf·‘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독일어)다. 서독은 동독의 정치범을 빼내오기 위해 돈을 건넸지만 우린 북한 가족을 위한다고 봐 달라. 북·중 접경지대 주민을 ‘이남화’하고 북한 동포들이 대한민국에 고마움을 느끼도록 하는 투자다. ‘김정은 달러 주머니만 채워준다’는 비판도 있지만, 북한 당국이 털어내기 전 주민들이 모두 써버린다. 남북협력기금을 가족 송금에 쓸 수 있게 저리로 융자해 주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에 송금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브로커가 중국 휴대전화를 북한에 몰래 갖고 들어가 신호가 잡히는 접경지역에서 단속을 피해 남쪽 가족과 통화하게 해준다. 간단한 안부를 나눈 뒤 남쪽의 탈북자가 지정된 한국 또는 중국 계좌에 입금하면 이를 확인한 브로커가 북측 가족에게 돈을 건네주는 방식이다. 워낙 위험한 일이라 수수료가 보통 30%에 이른다.” (김은실씨는 “혼자 탈북했다는 죄책감과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보내는 돈”이라며 “우린 남한 일부에서 비난하듯 결코 가족을 버리고 온 쓰레기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겠나”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 정권 들어 단속이 심해져 브로커가 챙기는 몫이 40~50%까지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탈북자 지원 재단도 설립돼 있는데.
“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연간 260억원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 엉뚱한 곳에 투입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 탈북자 사회를 모르는 분들이 책임자로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단체는 실상을 가장 잘 아는 장애인들이 주로 운용’하는 식인데, 하나재단은 그렇지 못하다. 이사장 자리가 어렵다면 사무총장이라도 탈북 인사가 맡아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찬일은 …
전방 북한군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1979년 여름 휴전선을 넘어 귀순했다. 3개월 만에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아차!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고려대 정외과를 나와 건국대에서 탈북자 1호 박사를 받았다. 평북 의주 출신이지만 이젠 한국에선 산 세월이 훨씬 길다. 탈북자 사회를 이끄는 대표적 리더로 꼽힌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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