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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별궁서 시민 자전거길로…900년 역사속 청와대 개방사

중앙일보 2017.08.31 10:36
청와대 앞길에 자전거 도로가 신설된다. [연합뉴스]

청와대 앞길에 자전거 도로가 신설된다. [연합뉴스]

49년.  
그동안 밤에 다닐 수 없었던 청와대 앞길의 24시간 통행이 가능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곳에 자전거도로까지 생긴다. 8월 30일 서울시는 9월 중순까지 청와대 앞길 510m 구간에 폭 1.2m의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자전거도로와 연계해 청와대와 삼청동ㆍ광화문ㆍ효자동을 잇는 ‘ㅁ’자형 코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넉넉하게 30분이면 경복궁 길을 따라 청와대 앞을 둘러보는 게 가능해진다.

60년대초엔 수만명 시민 봄나들이 즐겨
김신조 사건으로 88년까지 통행 금지
대통령 슬로건 따라 점진적으로 공개

김정숙 여사가 6월 26일 밤 청와대 앞에서 열린 청와대 앞길 개방행사에서 시민들과 함께 개방된 길을 걷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정숙 여사가 6월 26일 밤 청와대 앞에서 열린 청와대 앞길 개방행사에서 시민들과 함께 개방된 길을 걷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앞길은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의 하나로 지난 6월 26일 상시개방됐다. 이전에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만 다닐 수 있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청와대 개방사는 주로 현대사의 명암과 궤를 같이했다.   
1.21사태로 경찰이 시민들을 상대로 철저한 검색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21사태로 경찰이 시민들을 상대로 철저한 검색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벚꽃이 열고 김신조가 닫았다=청와대 개방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 2~3일간 경내 일부를 공개한 게 효시였다. 1955년 4월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를 찾은 6만 명의 시민들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에서 사진촬영을 할 수도 있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1968년까지 청와대 공개는 연례행사처럼 이뤄졌다. 66년엔 박 전 대통령이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어린이 방문객과 마주치고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웃었다는 일화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거주지라는 상징적 공간은 국민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역대 대통령도 이에 부응해 개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20년 가까이 청와대 개방이 막혔다.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한 68년 1ㆍ21사태(김신조 사건) 때문이다. 관례와 같았던 경내 개방이 중단되고 앞길을 포함한 청와대 주변 도로가 전면 차단됐다. 대통령 경호를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인왕산과 북악산도 차츰 출입이 금지됐다.
 
◇사람은 ‘OK’, 차량은 ‘NO’=노태우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금단의 구역인 청와대 역시 권위주의 청산에 나섰다. 그는 효자동ㆍ궁정동, 삼청동ㆍ팔판동에 이르는 11㎞ 구간의 부분 통행을 88년부터 허용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도보통행만 가능했다. 전국 시ㆍ군ㆍ구에서 희망단체를 접수받아 경내 일부를 열고 같은해 4월엔 인왕ㆍ북악스카이웨이를 개방했다. 다만 영빈관 등 일부 공간만 공개하고 단체관람만 허용한 탓에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집권 후반기엔 성균관대 후문에서 삼청동에 이르는 길에 철조망이 설치되는 등 경비도 강화됐다.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등산로 개방에 따라 이를 기념하는 걷기대회가 1993년 3월 14일 오전 7시 청와대∼인왕산을 잇는 코스에서 열려 많은 시민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중앙포토]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등산로 개방에 따라 이를 기념하는 걷기대회가 1993년 3월 14일 오전 7시 청와대∼인왕산을 잇는 코스에서 열려 많은 시민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중앙포토]

93년 문민정부 출범은 청와대 개방의 전환점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식을 하자마자 2월 25일 “청와대 진입로의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앞길 통행을 허용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통행시간은 이때 정해졌다. 5월엔 인왕산 등산로를 전면 개방하고 7월엔 궁정동 안가를 철거한 뒤 시민공원인 무궁화동산을 조성했다. 경내개방 코스도 대정원 앞, 수궁터로 확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11월 조선 후궁들의 위패가 있는 칠궁을 관람 코스에 넣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복궁 신무문, 집옥채 개방행사에 참석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뒤에 건물이 집옥채. [중앙포토]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복궁 신무문, 집옥채 개방행사에 참석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뒤에 건물이 집옥채. [중앙포토]

◇탈권위ㆍ문화융성 기조로 개방 지속=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 경내 관람코스를 본관 앞 녹지원까지 확대했다. 2006년 9월엔 그동안 막아놨던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을 개방했고, 2007년 4월엔 청와대 뒤편에 자리한 북악산 성곽로를 열어 40년 가까이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이었던 북악산을 국민에게 돌려줬다. 
낡은 권위주의를 탈피하겠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효자동사랑방을 확대, 개축한 ‘청와대사랑채’를 개관했다.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관광홍보관이다. 그는 청와대 앞까지 다니는 시내버스 노선도 만들었다. 문화융성을 강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 사랑채 2층의 청와대관을 개편하며 볼거리와 접근성을 높였다. 대통령의 애장품을 전시하거나 사진촬영과 같은 체험코너를 주로 마련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49회 식목일을 맞아 청와대 경내 수궁터에서 손명순 여사와 함께 기념식수를하고 있다. 수궁터는 조선 초 경복궁 후원으로 사용하던 지형을 복원한 곳이다. [중앙포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49회 식목일을 맞아 청와대 경내 수궁터에서 손명순 여사와 함께 기념식수를하고 있다. 수궁터는 조선 초 경복궁 후원으로 사용하던 지형을 복원한 곳이다. [중앙포토]

900년 전엔=청와대 주소인 '서울 청와대로 1'은 900년의 역사를 가졌다. 고려 숙종 때 남경(서울)에 이궁(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으로 지은 연흥전 터가 있던 곳이다. 조선 초기엔 궁궐(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했다. 당시의 지형을 복원한 현 수궁터에서 옛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뒤에는 군사를 사열하는 연무장 용도로 쓰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관련 시설이 철거되고 총독 관저가 지어져 1937~45년까지 7~9대 조선총독이 사용했다. 광복 후엔 미군정 사령관인 존 하지 중장의 관저로도 쓰였다.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비로소 한국 정부로 이관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원군이 이곳에 세웠던 전각 이름을 따 ‘경무대’라 불렀고, 4ㆍ19로 그가 하야하자 윤보선 전 대통령이 자유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금의 청와대로 이름을 바꿨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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