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 모시옷 입고 장작 패는 남자

중앙일보 2017.08.30 01:00 경제 6면 지면보기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양해를 구하고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열린 방문이 앵글에 방해된다고 달려와 방문을 닫아주는 초은당. 그 마음이 찍혔다. [사진 조민호]

양해를 구하고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열린 방문이 앵글에 방해된다고 달려와 방문을 닫아주는 초은당. 그 마음이 찍혔다. [사진 조민호]

그 흔한 가스 불도 없다. 마른 가지를 살라 찻물을 끓이고 밥을 짓는다. 큰 돌을 쌓아 축대와 담장을 만들고, 작은 돌을 모아 벽난로를 지었다. 쌓은 모양과 정성이 ‘이 양반, 보통내기 아닐세’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평생 카피라이팅의 스승으로 모셨던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인 고 한창기 선생의 동생인 고 한창훈 선생에게 배운 솜씨라고 했다.)
 

어린 아이처럼 웃던 초은당 주인
지인 집 지어주는 게 취미라는데
풀숲에 숨어 살면 이런 얼굴 될까

벌교에 유명한 서대 무침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2시간을 달려가 맛보았다. 아무리 시간이 넘쳐 흘러도 서대 무침만 먹고 돌아오기엔 왕복 4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근처 보성에 아주 재미있게 사는 후배가 있는데, 한 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동행했던 아랫집 목사님이 말한다. 내 표정에서 왕복 4시간 어치 서대 무침 맛은 아니었다는 것을 읽어 내셨나 보다. 그렇게 만났다.
 
초은당(艸隱堂)이라고 했다. 민머리에 성긴 턱수염, 직접 염색을 하고 지어 입었다는 모시옷, 동그란 앤틱 안경테.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외모와 의관이었지만 풀 속에 숨어 있는 이 작은 집에 그는 잘 어울렸다. 오히려 내가 더 튀어 보였다. 집을 지어 놓은 솜씨, 艸隱堂(‘풀숲에 숨어 있는 집’이라는 뜻의 당호를 본인의 호로 삼았단다)이라 새긴 현판의 글씨, 대합조개 껍질을 박아 바닥을 장식한 장독대, 집안 곳곳에 가득한 범상치 않은 솜씨에 홀딱 반했다.
 
“솜씨가 아티스트십니다” 했더니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했 단다. 염색도 했으나 돈이 안 돼 경옥고를 달여 팔아 생계를 꾸리고 지인들의 집을 지어주는 취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웃는 모습이 아이같다. 풀에 숨어 살면 이런 얼굴을 갖게 되는 걸까? 아무 것도 없는, 아이같은 텅 빈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걸까? 풀에 숨어 살아야 이렇듯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걸까?
 
돌아오는 길 내내 포월침두로 돌아와 다시 혼자가 된 후까지 그 만남의 기억이 오래 갔다. 다 버렸다, 욕심없다, 평온하다, 이렇게 살면 어때….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얘기했던 말에 힘이 좀 빠질 것 같았다. 아직 한참 멀었다, 나는.
 
부족한 서대 무침의 맛이 맺어준 인연. 다시 방문하면 무쇠솥밥을 해 먹자고 했으니 나는 떡을 사가야지. 술을 마시지 않는다니 대나무를 깎아 만든 포크로 꿀 찍어 먹어야지. 
공유하기
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