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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유곡리 “109명 중 넷 빼고 노인, 동네 사라질까 걱정”

중앙일보 2017.08.28 01:51 종합 4면 지면보기
인구 5000만 지키자 
급속한 고령화는 시골 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의 어린이놀이터는 잡초만 무성하다. [정종훈 기자]

급속한 고령화는 시골 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의 어린이놀이터는 잡초만 무성하다. [정종훈 기자]

지난 6월 중순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에 가수 싸이의 노래 ‘연예인’이 울려 퍼졌다. 휴전선과 맞닿아 있어 인근 군부대에서 대북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어 가수 토이의 ‘뜨거운 안녕’이 이어졌다.
 

고령화 위기의 마을들
유곡리, 대낮인데도 인기척 없고
폐가 10% 가게·병원도 없어
“혼자 죽는 걸 조심해야 하는 상황”

대도시 사각지대에도 비슷한 현상
대구 대봉2동 등 고독사·빈집 늘어

그런데 신나는 노래 리듬과 달리 마을엔 인기척을 찾을 수 없고 정적만 흐른다. 어린이놀이터는 텅 비었다. 골목에는 노인용 보행보조기가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 주민등록 인구는 109명(5월 기준)이지만 실제 거주자는 100명이 안 된다. 안석호(76) 이장은 “할머니들이 봐주고 있는 초등학생 셋이랑 예순 가까운 아저씨 빼고는 다 65세 이상 노인이다. 여긴 70~80대라야 노인 축에 든다”고 말한다. 아이 둘은 다문화가정의 자녀다. 어머니가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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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는 학생이 줄면서 20년 전쯤 문을 닫고 방치돼 오다 2015년부터 글램핑장으로 쓰인다. 아이 셋은 차로 20분 걸려 읍내로 통학한다. 장영자(74) 할머니는 “마을에 젊은 사람은 없고 전부 노인네만 바글바글하다. 혼자 사는 사람은 죽는 걸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집주인이 숨지면 빈집이 된다. 마을의 60채 중 7채가 방치돼 있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비닐하우스와 유리창이 망가져 있다. 근북면에는 전입자가 거의 없다. 도시로 나가거나 숨지면서 인구가 줄어들 뿐이다. 최근 4년 새 6명이 숨졌다.
충남 서천군 문산면엔 주인 없는 빈집이 곳곳에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서천군 문산면엔 주인 없는 빈집이 곳곳에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가게·병원이 없어 인근 김화읍내까지 차로 20분여를 나가야 한다. 청년회장도 맡을 사람이 없다. 농사 일손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한다.
 
“그래도 (9년여 전) 아기 울음소리 들릴 때가 좋았지. 요즘은 밤만 되면 동네가 정말 조용해. 다들 나이 들어 한 명씩 숨지니까 이러다 마을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야.” 최연장자인 김경렬(87)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근북면의 노인 비율은 59.3%(2015년 인구센서스). 전국 3482개 읍·면·동 중 1위다. 주민등록 기준이라 안석호 이장이 실제로 집계한 비율과 차이가 있다.
 
전국적으로 노인 비율이 50%를 넘는 마을은 17곳, 40% 이상은 364곳이다. 2005년 50%를 넘는 데가 경남 의령군 궁류면·유곡면 등 4곳에 불과했으나 10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이런 곳은 20~39세의 핵심 가임여성이 거의 없다. 2000년대 중반 증가하던 외국인 신부도 예전만큼 많지 않다. 애는 태어나지 않고 자연 감소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네 소멸’로 이어진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4개(36.8%)가, 3482개 읍·면·동 중 1383개(39.7%)가 30년 내에 사라질 것으로 추정한다.
 
노인 비율이 50%가 안 되는 곳도 사정이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난 6월 중순 충남 서천군 문산면(노인 비율 49.2%·26위)을 찾았다. 노인이 많은 축에 드는 은곡리는 주민 101명 중 61명이 노인이다. 초등생·유치원생이 2명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만 4명이 세상을 떴다. 전입자는 평균 한 명도 안 된다. 구수환(74) 이장은 “지난해 주민이 왕벌에게 물려 119 구급차로 실려 가는 동안 숨졌다. 서천군에 병원이 없어 20㎞ 떨어진 부여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네 소멸’ 현상의 가장 급한 문제는 폐가(廢家) 처리다. 전국의 빈집은 2005년 72만여 호(戶)에서 2015년 106만여 호로 46.9% 늘었다. 문산면에서도 거미줄투성이인 폐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집 안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문은 부서져 있다.
 
광역시도 비슷한 징조를 보인다. 대구시 중구 대봉2동은 인구의 23.8%가 노인이다. 광역시로선 높은 편이다. ‘고독사’가 이어지면서 빈집이 10여 채에 달한다. 김종호 대봉2동 사무장은 “복지 지원을 해도 빈곤 노인이 많아 사각지대가 많다. 빈집 문제도 갈수록 커질 것”이고 말했다.
 
지난 6월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빈집 철거를 촉진하기 위한 농어촌정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해도 철거하지 않으면 직권 철거하고 3년마다 빈집 실태조사를 의무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자체는 ‘동네 소멸’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동빨래차 운영(충남), 집배원을 활용한 독거노인 안부 확인(전북), 자원봉사자·노인 자매결연(경북) 등이 대표적이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속도라면 한국이 지방 소멸로 가는 길은 일본과 거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중앙정부는 소멸 위험도에 따라 정책 지원을 차등화하고 지방마다 ‘중핵도시’를 선정해 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철원·서천=정종훈·백수진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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