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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고혜련의 내 사랑 웬수(7) "여성들이여, 수퍼우먼을 사양하라"

중앙일보 2017.08.24 04:00
직장여성. [중앙포토]

직장여성. [중앙포토]

 
“나도 평생직장을 다녔는데……. 내가 당신한테 집안일 시킨 적 있어?” 이건 내가 일생을 우려먹는 단골 메뉴다. 아마 듣는 사람 귀에 딱지가 맺혔을 터. 상대는 이렇다 말이 없다. 아마도 속으로 “일생 생색을 내는구나, 저 인간….” 그러면서 내 알량한 심지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거야 참, 누가 그러라고 했나. 자업자득이지….”그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도 난 할 말이 별로 없다.  

직장 퇴근후 집안일 도맡아 했지만
남편, 나의 중노동 고마워 하지 않아
직장 충실하고 집안일 후순위로 미뤘어야


 
당시만 해도 맞벌이가 별로 익숙하지 않은 데다 그 집 식구들은 내가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길 원했으니까. 하지만 호기롭게 나도 남자들처럼 한 가정쯤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퇴사 제안을 거절했고, 그는 그냥 ‘너그럽게’ 동의한 죄 밖에 없다.  
 
 
집안일 일생 내 차지 
 
그런 내가 왜? 한마디로 내가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고 들어왔는데 왜 집안일은 일생 내 차지가 돼야 하냐는 한풀이다. 누가 굳이 하라고 했나. 둘이 벌어 여유가 있는데 알아서 일하는 아줌마를 매일이든 필요한 만큼 써 청소와 식사는 해결하면 되는 거였다. 그것도 안 되는 휴일에는 외식으로 세끼를 때워도 누가 뭐라 했는가 말이다. 그건 순전히 내 선택이었다.
 
“아줌마를 매일 쓸 정도의 일감이 안 되니 그리고 타인이 집을 드나들면 불편하고 돈을 낭비하기 싫으니까, 집에 남은 음식이 있는데 마저 먹어치우려고, 먼지가 쌓이면 당장 내 눈이 못 참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내가 제풀에 앞서가며 일을 해치운 거다. 도통 뜻이 없는 그 인간에게 청소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가르쳐 시키느니 ‘내가 한다. 내가 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질구레한 일로 집에 오면 직장에서 보다 더 바빠졌다.  
 
 
[그림 = 김회룡]

[그림 = 김회룡]

 
그러고는 “나도 그 인간처럼 퇴근 후 느긋하게 책도 뉴스도 봐야하고 지인들과 회식자리도 갖고 문화생활도 해야하는데…” 하면서도 집안일에 지쳐 모든걸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피곤에 절면 몇 달치 잔소리를 두서없이 풀어놓아 상대를 질리게 했던 것이다.
 
내가 왜 모르랴. 상대가 내가 해 온 ‘중노동’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생색내는 잔소리에 신물이 난다며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퍼 붓고 있음을. 그러니 애시당초 길을 잘못 들여놓은거다. 후일을 위해 조금 더 머리를 써 인내를 갖고 할 일, 안할 일을 계획적으로 골라서 했다면 지금쯤 나는 대접 받으면서 저절로 상대가 고마운 마음에 안절부절하게 만들었으리라.
 
이제는 고마움은커녕 아예 당연한 게 된거다. 결국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불만을 소리높여 털어놓는 나만 한심하고 속좁은 인간이 된거다. 작은거 아낀다고, 시간활용을 극대화한다고, 스스로 작은 성취감에 취해 뒷날 생각 안하고 조급하게 굴었던 게 후회막급이다.  
 
 
[사진 freepik]

[사진 freepik]

 
무엇보다 중요한건 고급 인력(?)의 시간과 에너지를 그렇게 탕진하지 말고 장기적 차원에서 보다 생산적으로 활용했으면 자나깨나 저 높은 고지를 향해 직장에서 끈질기게 사다리를 타고 있는 주변 남성 동지들을 멋지게 앞서가며 지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이 가면 집토끼, 산토끼 다 놓치고 빈손 보며 후회하며 땅을 칠 일이다. 이왕 들어온 직장에 올인할 것, 만약을 대비해 늘 공부해 놓을 것. 위로 올라갈수록 높은 자리는 적고 경쟁은 심해지니 머지 않아 내 인사를 우지좌지할 바로 위 선배도 존중하며 대할 일이다.  
 
너나 나나 비슷한 처지라며 동료들에게 아무 얘기나 떠벌리지 말고. 직장 경력 한참 후 어리석은 내가 깨달은 일이다. 나름대로 직장에도 소리없이 누구 계, 누구 사람 등으로 불리면서 줄서기를 은밀하게 하고 있는데, 내가 그 딴 일에 곁눈 한번 준적이 있느냐 말이다.
 
 
수퍼우먼 운운, 칭찬 아냐 
 
 
수퍼우먼은 없다. [중앙포토]

수퍼우먼은 없다. [중앙포토]

 
주위에서 ‘수퍼우먼’ 운운하면 그거 은근히 비웃는 거다. 칭찬으로 알면 이미 늦은거다. 당신이 알아서 모든 걸 해 치우려는 건 일종의 강박증이다. 시간에 대한 강박증, 일에 대한 중독증 , 성취에 대한 강박증 말이다. 그러니 나 아니면 안 되는 아주 꼭 필요한 집안일 아니면 후순위로 미루라. 그럼 누군가가 하게 돼 있고 굴러가게 돼 있다.
 
그래야 늘 공부해서 준비된, 프로다운 직장인으로 대접받고 집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장기적 차원에서 보면 유능한 직장인으로 오래 살아남고 남편에게 대접받고 집안의 평화도 유지하게 되는거다.  
 
남편들, 아내들이 집안일 잘해왔다고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장에서 꿋꿋하게 성공한 여자를 훨씬 멋있어 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여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답이 금세 나온다.
 
고혜련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hrko3217@hotmail.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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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 고혜련 (주)제이커뮤니케이션대표 필진

[고혜련의 내 사랑 웬수] 기자로 은퇴한 출판인. 결혼이 흔들리고 있다. 인륜지대사의 필수과목에서 요즘 들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과목으로 주저앉았다. 결혼 한 사람들은 ‘졸혼(卒婚)’과 ‘황혼 이혼’도 서슴지 않는다. 결혼은 과연 쓸 만한가, 아니면 애당초 폐기해야 할 최악의 방편인가? 한 세상 울고 웃으며 결혼의 명줄을 힘들게 지켜가는 선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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