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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중 수교 25년, 국교 ‘리셋’하라

중앙일보 2017.08.24 02:44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한국·중국 두 나라는 5년마다 수교 기념행사를 공동 개최해 왔다.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는 당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그러나 수교 25주년을 맞는 올해, 학술회의와 음악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정작 양국 정부가 함께 개최하는 것은 없다. 이것은 현재 한·중 관계가 처한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2년 수교 이후 가장 모범적인 양자 관계로 평가받았던 한·중 관계가 이처럼 냉각된 것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인한 갈등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안보 이슈로 한·중 관계의 뿌리가 흔들리는 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봉합해 온 정태적(static) 안정 관계가 수명을 다했다는 점이다.
 

수교 25주년 기념하는 이유는
한·중 간 인식 차이가 굳어져
중·일처럼 되는 것 피하려 함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 절실

이미 중국은 부상한 힘을 바탕으로 미국과 ‘전환의 마찰(transitional friction)’을 겪고 있다. 중국의 주변 지역에서 세계 강국의 교두보를 구축하고자 하고, 한국에 대해서도 “중견 국가가 미국의 안보 우산 밖으로 좀처럼 걸어 나오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한국이 처한 딜레마를 이해하기보다는 조급한 선택을 강요하면서 ‘대국의 여유’를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을 보는 한국의 시각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사드’ 리스크가 그대로 경제 리스크로 투영되는 일을 겪으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회의감이 넓게 퍼졌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의 발전을 논의하는 데 심리적 장애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은 한·중 관계에 리셋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한다. 현재 한반도 안보 구조는 양자 관계를 넘어 국제적 차원에서 완전히 다르게 포착되고 있고 한·중 경제 관계도 협력보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연간 1000만 명에 이르는 양국의 인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상호 호감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미 동맹, 한반도 통일, 북한 체제의 존재 방식과 같은 구조적 안보 쟁점에 대해 양국이 전략적 협력에 이르지 못하는 한 사드 배치와 같은 갈등 상황은 언제든 재발하고 그때마다 한·중 관계가 출렁일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 중국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읽으면서 가까운 이웃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이웃 증후군’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의 핵심이익이라는 일종의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이것이 침해될 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외교자산을 축적해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의 상관성을 높이는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중국도 한국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광장에서 발아한 한국 민주주의가 대중국 정책결정 과정에도 깊게 투사되기 시작했다. 즉 중국이 문재인 정부의 최대 자산이자 부담인 여론과 민심의 흐름을 과소평가하는 한,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 질서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한국 내에서 한·미 동맹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한·중 협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중국이 매력 있고 책임 있는 이웃으로 등장하지 못하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의 양보를 기대하기 전에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 비전을 창의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중 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양국의 인식 차이가 하나의 프레임에 갇혀 수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한 전철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72년에 수교한 중·일 관계는 한·중 관계의 소중한 반면교사다. 중국과 일본은 상호 전략적 이해가 커지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나타났고 아직까지 이 프레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중·일 수교 40주년 기념식을 베이징과 도쿄에서 제각각 개최한 데 이어 다음달 열릴 수교 45주년 행사의 공동 개최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중 관계가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대나무가 높고 곧게 자라는 것은 중간에 매듭을 짓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도 올바른 매듭을 짓고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 겪는 성장통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시진핑 주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92년 한·중 수교를 맺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한다. 되돌아보면 난마와 같았던 수교 당시의 실타래를 풀었던 것도 미래를 내다보는 양국 지도자들의 전략적 안목과 정치적 결단이었다. 지금 여기서 다시 한번 그 경험과 교훈을 호명할 필요가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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