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중수교 25주년]신정승 전 주중대사 “사드 갈등 섣불리 타협하면 마늘 분쟁 같은 상황 반복될 수도”

중앙일보 2017.08.23 14:16
수교 이후 25년동안 한ㆍ중관계는 여러번 고비를 맞았다. 첫 고비는 ‘마늘 분쟁’이었다. 2000년 6월 한국 이 급증하는 중국산 수입 마늘에 대해 고율의 긴급 조정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에 대해 잠정 수입금지라는 초강력 보복 조치를 발동했다. 갈등은 결국 그해 7월 한국 정부가 중국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수습됐다. 한국 정부는 세이프 가드 조치를 두 달 만에 번복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당시 주중대사관 공사를 지내면서 ‘양국 간 마늘 교역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던 신정승 전 주중대사를 한ㆍ중 수교 25주년(8월 24일)을 맞아 지난 14일 만났다. 신 전 대사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문제와 관련 “'마늘 분쟁’ 때처럼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섣불리 타협한다면 국민 감정을 다칠 수 있고, 한미동맹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혜롭게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전 대사는 1992년 당시 외무부(현 외교부) 동북아 2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ㆍ중 수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했고, 2008~2009년 주중대사를 지냈다. 현재 동서대 석좌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정승 전 주중대사가 14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한ㆍ중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신정승 전 주중대사가 14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한ㆍ중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마늘 분쟁 때 중국의 요구를 거의 수용하면서 '굴욕적'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중국이 최초로 한국에 힘을 투사해보고 압박을 가한 사례였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마늘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아우성을 치니까 정치인들이 값싼 중국산 마늘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긴급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주중 대사관 공사로서 본부에 ‘중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크게 보는 상황이고, 중국산 마늘이 가격 폭락의 원인이라는 확실한 근거도 없는데 무역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의 긴급보고도 여러차례 올렸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요지부동이었다. 
 또 기왕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했으면 중국의 압박이 있어도 더 끌고 갔어야 했다. 2개월 후 규제를 사실상 해제하는 합의를 한 것은 우리 통상정책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은 사드 문제 때문에 한ㆍ중관계가 매우 어려운데.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섣불리 타협한다고 하면 국민 감정이 다칠 수 있고 한ㆍ미 동맹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5년 전 수교 당시엔 한국과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거의 비슷했지만 지금은 8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중국 입장에선 좀 더 가벼운 상대로 보고 한국의 팔을 좀 비틀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혜롭게 다루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
 
-25년 간의 무역ㆍ투자 관행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에서 기업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언젠가 올 일들이 좀 당겨졌다고 하더라. 중국 내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임가공 무역은 더이상 어렵게 됐다. 또 중국 자체 기술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예전에는 한ㆍ중이 보완적 관계였다면 점차 경쟁적 관계가 됐다. 무역 갈등이 생길 여지가 많아졌다. 경쟁자가 되면서 중국은 비관세 장벽 등을 통해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사드 보복 때문에 피해액이 얼마다’는 식의 접근은 맞지 않다. 기술이나 디자인 면에서 중국 제품에 비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과거처럼 중간 기술 수준의 제품을 특별한 노력 없이 시장이 크니 팔겠다는 식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시대는 지났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 최승식 기자

신정승 전 주중대사. 최승식 기자

 
-그렇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요새 중국 사람들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서로의 경제 발전과 번영’, ‘각자의 평화적 통일’ 이 세 가지가 수교 당시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이 초심을 강조하는 진짜 목적은 사드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기 때문에 사드를 배치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메시지다. 저도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제가 얘기하는 초심은 한ㆍ중이 수교 당시 공동 서명한 5가지 원칙(주권 및 영토 보존의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과 호혜)이다. 구동존이(求同存異)ㆍ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처럼 상대방의 생각이나 정책의 차이를 존중하며 그대로 인정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