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수진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경쟁자도 롤모델도 없이 살아온 30년"

중앙일보 2017.08.23 11:32
은퇴 후 첫 에세이집을 발간한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장진영 기자

은퇴 후 첫 에세이집을 발간한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장진영 기자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지난해 현역 발레리나에서 은퇴한 강수진(50)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두 번째 자전 에세이를 펴냈다. 30여 년 발레 인생을 돌아보고 은퇴 후 소회와 각오를 밝힌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인플루엔셜)다. 지난 2013년 첫 자서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출간한 이후 4년여 만에 내놓은 책이다. 그 사이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4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고국에 정착했다. 1982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며 시작된 30여년간의 타향살이를 끝낸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7월 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극장에서 그가 가장 사랑한 작품 ‘오네긴’의 주인공 타티아나로 마지막 발레 공연을 펼쳤다. 8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였다. “(은퇴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 국립발레단의 성장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그를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 초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에 재임명됐다. 이번에 보장된 임기는 2020년 2월까지다.
2016년 7월 22일 강수진 예술감독의 은퇴공연 커튼콜. [사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2016년 7월 22일 강수진 예술감독의 은퇴공연 커튼콜. [사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하루 7시간은 자보려고 노력”=강 예술감독은 혹독한 연습으로 이름난 무용수였다. 관절 마디마디가 울퉁불퉁 불거진 발 사진은 그의 연습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아침 2시간 훈련’을 철칙으로 지켰다. 매일 새벽 5시 30분 일어나 사우나로 근육을 풀고 2시간 동안 고강도 훈련을 했다. 이제 그에게 새벽 훈련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는 “은퇴 후 아침의 여유를 찾았다”면서도 “신체적으로 칼로리 소비는 덜 하겠지만 예술감독으로서의 책임감에 어깨는 더 무겁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그는 “잠은 무덤에 가서 자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는 시간을 아껴 연습을 하느라 하루 수면 시간이 4시간이 채 안 됐다. 하지만 이젠 “하루 7시간은 자보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현격히 줄어든 운동량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 쉽게 피로해졌기 때문이다.  

현역 은퇴 1년, 에세이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출간
"남과 경쟁하지 않은 것이 성공비결.
나의 라이벌은 항상 어제의 강수진."
"현역 땐 4시간 취침, 요즘은 7시간 자려 노력.
단원들에게 나만큼 연습하라 고집 안해.
남편ㆍ반려견과 함께 출근하는 삶 행복"

엄청난 연습량을 보여주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 남편 툰츠 셔크만이 찍은 사진이다.

엄청난 연습량을 보여주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 남편 툰츠 셔크만이 찍은 사진이다.

#“경쟁자도, 롤모델도 없다”=그는 스스로를 “발레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실력이 느는 맛과 그 기쁨에 중독됐다는 것이다. 만족감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다보니 타인을 의식해 경쟁하지도, 누군가의 삶을 모델 삼아 흉내내지도 않는다. 그는 “경쟁자도 없고, 롤모델도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현역 발레리나로 장수한 비결 중 하나로 “남과 경쟁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경쟁에 빠지면 몸과 마음이 먼저 지치기 쉽다. 사람마다 성장 곡선, 전성기가 다 다르므로 남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내 때에 맞게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내 경쟁자는 언제나 ‘어제의 강수진’”이라고 했다.
발레리나 강수진. 2014년 모습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발레리나 강수진. 2014년 모습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래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새 책 제목대로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다운, ‘강수진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에게 그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색깔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할 뿐”이다. 그는 “단원들에게 ‘나만큼 연습하라’고 바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못박았다. 물론 예술감독 부임 초기엔 단원들과 연습 스타일이 달라 당황하기도 했다. “그 땐 연습 도중 점심시간이 왜 있는지도 이해가 안됐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젠 “각자 재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집중력이 강하면 세 시간 연습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한 시간만에 얻을 수도 있다. 자신의 패턴을 찾아 꾸준히 그 길을 가면 나쁜 쪽으로는 안간다”고 말했다.
강수진 단장의 초등학교 때 모습. 경희초 교복을 입고 있다. [사진 인플루엔셜]

강수진 단장의 초등학교 때 모습. 경희초 교복을 입고 있다. [사진 인플루엔셜]

강수진 예술감독이 자신의 사무실에 갖다둔 부부 사진. [사진 인플루엔셜]

강수진 예술감독이 자신의 사무실에 갖다둔 부부 사진. [사진 인플루엔셜]

반려견 써니와 함께 출근하는 강수진 예술감독. [사진 하지영포토스튜디오]

반려견 써니와 함께 출근하는 강수진 예술감독. [사진 하지영포토스튜디오]

#“감사하고 행복”=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은 단어는 ‘감사’와 ‘행복’이다. “발레단의 수장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고, “단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2015년 시작한 단원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그가 집중적으로 언급한 ‘자랑거리’는 솔리스트 강효형이 안무한 전막 창작 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다. 지난 5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선을 보였고, 6월엔 콜롬비아 보고타 마요르 극장의 초청을 받아 해외 초연을 했다. 다음달엔 캐나다 토론토와 오타와에서 공연한다.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로 남편 툰츠 셔크만(57)과 반려견 써니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처음 한국에 적응하면서 한 달에 체중이 15㎏이나 빠질 만큼 힘들어하던 남편이 이젠 한국이 제일 좋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와 남편, 그리고 써니 이렇게 세 식구는 발레단으로 함께 출근한다. 툰츠는 게스트 발레마스터와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고 있고, 써니는 사무실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발레단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파라다이스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는 그는 은퇴 후 새 삶의 리듬에 완전히 적응한 듯 보였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