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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상읽기] 개헌 방정식

중앙일보 2017.08.23 02:38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국회엔 로드맵이 나와 있고 대통령은 “그 일정대로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국민 열에 일고여덟은 찬성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개헌이다. 국회 개헌특위 시간표대로면 내년 2월까지 여야 합의 개헌안이 나오고 6월 지방선거 땐 국민투표에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주요 협상 현안을 법으로 만들어야 하는 국회는 지금쯤 이 문제로 떠들썩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미를 느끼긴 어렵다. 개헌이, 개헌보다 어렵다는 선거구제 개편과 엮여 있어서다.
 

권력구조가 개헌 출구라면 선거구 개편은 입구
어떤 정부형태 택하든 국회 견제장치 만들어야

선거구제 개편은 공직선거법 개정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개헌의 선결 조건이 아니다. 개헌은 주로 권력구조를 손보자는 얘기다. 예외 없이 불행했던 우리 대통령들 몰락의 도화선은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였다. 그게 가능했던 건 승자독식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 때문이다. 최순실도 다르지 않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을 거치며 이젠 정말 제왕적 대통령만큼은 바꿔보자는 생각이 국민적 합의로 봐도 될 만큼 커진 것이다.
 
물론 현행 헌법으로도 총리가 힘을 갖고 대통령을 견제하는 책임 총리, 책임 장관제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그런 권력 분산을 약속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국정이 정말 그렇게 운영될 거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결국 나라 틀을 구시대적 통치에서 협치로 바꾸려면 개헌밖에 없다는 건 현실이다. 물론 각론에 들어가면 첩첩산중이다. 당장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이원집정제·내각제를 놓고선 국민 여론도 엇갈린다.
 
그래도 집권이 아닌 분권, 여야의 국정 동반이란 방향성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정부 형태로 바뀌든 국회의 권한과 기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선 전 야 3당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에 대체로 합의하기도 했다. 문제는 더 커지는 덩치에 맞는 국회의 책임과 능력이다. 국민 의사를 더 잘 반영하고, 더 잘 반응해야 한다. 현행 선거법을 그대로 둔 채 국회에 힘이 실리는 건, 현실적으론 거대 양당 중진들에게 힘을 몰아주는 꼴이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실제로 내각제와 이원집정제는 비례성과 대표성이 높은 선거제도와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4년 중임 대통령제라 해도 대통령 권력 못지않게 국회 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공천=당선’인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다 대못을 쳤다. 취임 직후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나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묶어 버렸다.
 
문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로 가는 걸 염두에 둔 듯하다. 문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며칠 전 “우리는 중·대선거구를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 탄핵 이전에도 자유한국당의 영남 지지율은 60% 정도에 불과했다. 호남에선 10% 돌파가 어려웠다. 선거구를 2인 이상으로 늘리면 영남에선 내줄 여지가 많고 호남에서 얻을 곳은 없다. 역의 관계인 더불어민주당과는 처지가 다르다. 영남당이 밑지는 장사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대표성(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비례대표를 100석까지만 늘려도 50명 이상의 지역구 의원 선거구가 없어진다. 표의 등가성에 엄격하면 농어촌 지역구가 대폭 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갖고 있다. 내 자리가 없어질 게 뻔한 제도를 만들 입법자가 누가 있겠나. 결국 선거구제 개편이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20대 총선 땐 아예 선거구 공백 사태가 두 달 넘게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국회에서 합의하지 못하면 자체 개헌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분권·국민기본권 강화 개헌은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역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한다. 더구나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권력 분산을 건너뛴 제한적 개헌안에 얼마나 공감대가 생길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하는 건 틀림없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이 ‘글쎄’란 물음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길은 있다. 국회가 자기 손으로 처리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로운 선거구 획정 기구를 만들거나 제도를 바꾸면 된다. 여기가 개헌의 입구다. 국회 개헌특위가 다음주 개헌 토론회를 시작한다. 정부 형태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이 주된 과제다. 하지만 선거제 입구부터 가로막히면 개헌 출구인 정부 형태 논의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후보 시절의 개헌 약속을 뒤집었다. 소중한 기회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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