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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실패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정부

중앙일보 2017.08.23 02:36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종훈 사회1부 기자

정종훈 사회1부 기자

14일 자정 직전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양계농장 두 곳의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로부터 19시간이 지나도록 국민에게 모든 계란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집이나 음식점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먹어도 되는지, 동네 마트의 계란은 안전한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5일 오후 6시39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08마리’ ‘08LSH’ 등 문제의 계란 식별번호와 농장 실명을 공개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16일까지도 식별번호와 농장 실명을 언론에 언급하지 않았다. 16일 오전 살충제 계란 농가가 추가로 나왔지만 ‘철원 A농장’ ‘양주 B농장’ 식으로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에서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농식품부가 문제의 농장과 계란의 정보에 대해 이틀간 침묵하면서 “국민 안전보다 농가 보호가 먼저냐”는 비판이 일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우리가 먼저 공개해야 했다”고 밝혔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왼쪽)과 류영진 식약처장(왼쪽에서 둘째)이 22일 국회 농해수위에 나란히 출석했다. 두 부처는 ‘살충제 계란’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합뉴스]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왼쪽)과 류영진 식약처장(왼쪽에서 둘째)이 22일 국회 농해수위에 나란히 출석했다. 두 부처는 ‘살충제 계란’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합뉴스]

식약처라고 잘한 건 아니다. 언론이 피프로닐 등 살충제 성분의 인체 위해성을 자체적으로 분석하는 동안 묵묵부답이었다. 홈페이지에도 ‘피프로닐은 닭에 사용 금지돼 있다’는 식의 하나 마나 한 정보만 올렸다. 식약처는 “전수조사가 끝나기 전에는 살충제 계란의 유·무해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문제 없는 계란조차 꺼리는 ‘에그 포비아’가 전국적으로 퍼졌다. 당국이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자 급기야 대한의사협회가 나서 국민에게 위해성을 설명해야 했다.
 
2년 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 사태의 뼈아픈 경험을 벌써 잊었나. 정부는 메르스 감염이 시작된 병원의 실명을 비밀에 부쳤다. 보건복지부는 언론에 “병원 명을 공개하면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환자는 서울로 대전으로 부산으로 확산됐다. 국민은 외출을 꺼릴 정도로 극도의 불안에 떨었다. 보건복지부는 첫 감염 확인 후 18일 만에야 메르스 환자가 나온 병원 실명을 공개했다. 정부의 불통 속에 환자 186명이 나왔고 이 중 38명이 숨졌다.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정부인가. 메르스와 이번 계란 사태를 비교하면 담당 부처만 바뀌었을 뿐 정부 행태는 판박이다. 도대체 이런 사태를 얼마나 더 겪어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나아질까.
 
정종훈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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