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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3) 뭔가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

중앙일보 2017.08.22 12:00
요즘 손으로 몸으로 익히고 있는 것들을 요가 매트 위에 모았다. [사진 조민호]

요즘 손으로 몸으로 익히고 있는 것들을 요가 매트 위에 모았다. [사진 조민호]

 
딸 둘을 키우면서 어디에 어떤 재주가 숨어 있을지 몰라 제법 많은 과외를 시켰다. 머리에 숨어 있을까, 손가락에 숨어 있을까, 발가락에 숨어 있을까? 교과목 과외는 물론이고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발레까지. 아이들은 버거워했으나 나는 부러워했다.  

인생전성기, 내 나이론 명함도 못 내밀어
요리, 요가, 그림, 기타 등 재능 발굴 나서


 
스스로 기회를 주자. 앞으로 30년쯤 써먹을 수 있는 재주나 특기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을 수 있도록. 두 딸에게 주었던 것처럼 내 두 눈에, 열 손가락에, 세 치 혀에, 이두박근에도. 아직 서툴면 어때. 아주 더디면 어때. “이제 시작이야~” 하며 아이들을 격려하며 독려했듯이 달려가며 달래가며 가자. 백 살까지 살아 본 분의 말에 의하면 인생의 전성기라 하려면 내 나이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기에.
 
 
텃밭에서 소출도 
 
이곳 산에 들어와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텃밭을 가꾸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소출을 내었다. 먹고 살려고 카피를 썼지만, 이제는 먹고 사는 일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다. 묵혀두었던 카메라를 꺼내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고, 평생 집사람에게 얻어먹느라 있는지도 몰랐던 요리 재능을 발굴하고 있다. 또 뭐가 있을까?
 
요가를 시작했다. 거창읍까지 나가는 수고와 수강생 중 남자라고는 딸랑 나 하나밖에 없는 쑥스러움을 감수한 지 한 달째다. 소묘를 배우기 시작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뭐든 쓱쓱 잘도 그려내던 디자이너 친구들의 재주를 평생 부러워했지만, 감히 배워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러나 언젠가는 꼭 배워보고 싶었던 그림공부를 막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 카톡으로 보내면 그 방면에 꽤 유명한 친구가 평가하고 지도해준다.  
 
 
산에서 뭔가를 익히기 위해 포월침두에 어렵게 인터넷이 들어왔다. 인터넷을 쓰는 데는 돈이 드는데 배우는 건 모두 공짜다. [사진 조민호]

산에서 뭔가를 익히기 위해 포월침두에 어렵게 인터넷이 들어왔다. 인터넷을 쓰는 데는 돈이 드는데 배우는 건 모두 공짜다. [사진 조민호]

 
집에 다녀오는 길에 막내딸의 클래식 기타를 가져왔다. 존 윌리엄스라는 기타 연주자가 있다. 투게더라는 이름의 앨범을 지금까지 수백 번은 더 들었다. 기회가 온다면 배우고 싶었다. 죽기 전에 단 한 곡이라도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기타곡을 가지고 싶었다. 역시 시작했다.  
 
농사, 글쓰기, 사진, 요리, 요가, 드로잉, 클래식 기타~ 이런 꿈을 꾸어본다. 시골 초등학교에 6개월쯤 빌붙어 산다. 6개월 동안 졸업반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요가 동작도 알려주고,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고, 같이 텃밭도 가꾸고, 광고를 하며 익혔던 ‘Think Different!’의 방법도 알려준다. 졸업식 때 그들과의 추억을 곁들인 글과, 증명사진 찍듯 판에 박힌 졸업사진이 아닌 까불까불 천방지축 그들의 진짜 얼굴로 채워진 졸업앨범을 선물한다.  
 
아무튼 이 많은 기회를 스스로 주었으니 손가락에, 손바닥에, 혀에, 두 눈에 익혀 죽을 때까지 구워먹고 삶아먹고 볶아먹으며 살아라.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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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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