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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먹으면 치르가즘 느껴”…‘O성애자’, ‘O르가즘’ 흥행 비결은

중앙일보 2017.08.21 10:58
인스타그램에 '#치르가즘'을 검색하면 800건 넘는 게시글이 뜬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 '#치르가즘'을 검색하면 800건 넘는 게시글이 뜬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에 #성애자 검색하니 3만8000여 개 게시글  
 
‘치르가즘’은 이미 인터넷에서 보통명사다. 포털에 치르가즘을 검색하면 치킨을 먹고 이를 느꼈다는 '간증' 게시글이 눈앞을 꽉 채운다. 치르가즘은 ‘치킨’과 성적 쾌감의 극치에서의 흥분상태를 일컫는 ‘오르가즘(orgasm)’을 합성한 단어다. 좋아하는 치킨을 먹었을 때 극도의 쾌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치르가즘처럼 ‘―르가즘’, ‘―성애자’ 등의 성적인 표현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 최근 수 년간 급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 ‘#성애자’를 검색하면 3만8411개의 게시글이 노출된다. ‘치르가즘’도 894건의 게시물이 뜬다.
 
지난 2004년부터 '성애자'의 관심도 변화를 나타낸 구글트렌드 그래프. 2013년부터 관심도가 올라가기 시작해 계속 증가추세다. [구글트렌드]

지난 2004년부터 '성애자'의 관심도 변화를 나타낸 구글트렌드 그래프. 2013년부터 관심도가 올라가기 시작해 계속 증가추세다. [구글트렌드]

 
2013년 전후부터 이같은 단어가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현상은 구글트렌드 수치로 드러난다. 지난 10년 간 ‘성애자’에 대한 구글 트렌드 관심도 변화를 보면 2013년부터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 사용빈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4년째 유행의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 셈이다.
 
‘병맛(병신같은 맛)’이나 ‘스압(스크롤압박)’ 처럼 단순한 비속어와 달리 ‘―성애자’, ‘―르가즘’은 끝없는 파생 버전을 만들어내며 순항 중이다. 접미사처럼 쓰이는 특성 탓에 자신의 기호와 해당 단어를 잘 버무리면 ‘냉면성애자’, ‘고기성애자’처럼 다양한 단어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성애자’와 ‘―르가즘’ 흥행 비결은 "강렬한 느낌"
 
이 때문에 ‘―성애자’와 ‘―르가즘’이 ‘프사(프로필사진)’나 ‘존잘(매우 잘생겼다는 의미)’처럼 2030 세대의 일상에 녹아들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학원생 하준상(26)씨는 "자신의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해야 눈에 띄고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쓰던 이런 표현을 일상 대화에서 쓰는 이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성애자가 범람하는 이유로는 단어가 주는 강렬한 느낌을 꼽은 이들이 많았다. ‘―성애자’와 ‘―르가즘’ 만큼 자신의 선호도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거다. 직장인 정소영(27)씨는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 거부할 수 없는 본능적인 끌림이 성적 욕망과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쓰는 것 같다. 나도 빙수성애자, 영화성애자 이런 말을 자주 썼다”고 말했다. 
 
성애자 등의 표현에 일부 기성 세대는 민망함을 느끼지만 적지않은 젊은 세대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회사원 하태수(32)씨는 “우동을 좋아하는데 우동성애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서 그 단어를 쓴다. 친한 사람들끼리 우동성애자 같은 단어를 쓰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안 든다”고 주장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 담론에 대한 허용의 정도가 늘어났다.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고, 쓰지 않는 사람도 웃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다보니 일상적 표현이나 유머에 반영이 됐다”고 분석했다.
 
SNS에서는 닭발성애자, 치르가즘, 딸기성애자 등 다양한 성 관련 표현이 쓰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SNS에서는 닭발성애자, 치르가즘, 딸기성애자 등 다양한 성 관련 표현이 쓰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 일부에선 "잘못된 언어 사용" 
 
거부감을 느끼는 이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방송과 각종 인터넷 매체 등에서 ‘―성애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신동엽은 낙지 성애자?’, ‘서장훈도 놀란 청소성애자’ 등은 일부 언론 보도의 제목으로 올라올 정도다. 2013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가수 존박을 ‘냉면성애자’라 부르며 ‘―성애자’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지상파 방송국인 SBS는 지난 2015년 6월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 '물고기성애자' 표현을 자막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 
 
지난 2015년 6월 방송된 SBS의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는 '물고기성애자' 표현을 자막으로 썼다. [SBS 캡처]

지난 2015년 6월 방송된 SBS의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서는 '물고기성애자' 표현을 자막으로 썼다. [SBS 캡처]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성욕’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필리아(philia)’가 ‘시네필리아(cinephilia, 영화애호가)’로 파생되는 등 해외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이같은 현상을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해석했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성적인 표현을 쓴다고 무조건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어적 성폭력이 될 수 있는지 수용자 입장에서 가치중립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같은 현상이 비틀린 성문화를 반영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금기는 피해가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채우는 형태다. 일종의 비틀어 나타내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치르가즘의 어원격인 오르가즘은 검색을 해도 연령 인증을 받은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된다.
 
일부 학자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언어 사용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김미형 상명대 국어문화원장은 “일반 사물에 특이한 성적 지향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단지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 하고 있는 것이니 맞지 않는 표현이다. 다른 표현이 충분히 있는데 안맞는 단어를 쓰는 건 사회적 통용으로 의미가 전이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영익·송승환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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