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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판판이 헛발질 … 정부 신뢰 깨뜨린 계란 대란

중앙일보 2017.08.21 01:00 경제 9면 지면보기
박진석 경제부 기자

박진석 경제부 기자

해도 너무 했다. 살충제 계란 사태를 취재하면서 농림수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대한민국 중앙 정부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엘리트라는 중앙 부처 공무원의 우왕좌왕에 행정 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살충제 계란’ 사태 대응은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부처들은 14일 오후 2시에 확인한 살충제 검출 사실을 그날 저녁 11시 43분에서야 국민에게 알렸다. 그것도 문자메시지 하나 보낸 게 전부였다. 해당 농장 관할 지방자치단체에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홍보도 엉망이었다. 부처들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허둥댔다. 팩트 정정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친환경 농가에서도 0.01㎎/㎏ 미만의 비펜트린은 허용된다”는 잘못된 정보를 40시간 동안 유통했다.
 
17일에는 오전에 31곳의 부적합 판정 대상 농가 명단을 발표했다가 오후 들어 아홉 곳을 무더기로 교체했다. 새 명단마저 불완전 명단이었던 터라 결국 오후 5시가 돼서야 32개 농가의 명단이 최종 정리될 수 있었다. 9개 농가는 반나절 동안 억울하게 ‘살충제 농가’로 낙인찍혔다.
 
브리핑 장 밖에서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일부 조사 요원들은 농가에 계란을 모아 제출하도록 요청하는 등 샘플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지자체별로 조사 대상 농약 성분이 19~27개를 오락가락하는 등 기준도 통일돼 있지 않았다. 난각코드를 찍지 않거나 엉터리로 찍은 계란들이 발견되는 등 관리 부실 정황도 속속 포착됐다.
 
부처들은 문제점이 지적될 때마다 반성과 개선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하고 넘어가려는 듯한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은 대책들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계란 이력추적제 시행 예정 시기가 하루 만에 2023년에서 2019년으로 4년이나 앞당겨지는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건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 개선책이지 당장 듣기 좋은 사탕발림식 미봉책이 아니다. 급조한 대책의 발표가 아니라 기본적인 실력의 배양과 부처간 협업 및 제도 개선 등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처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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