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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시 '하늘의 얼룩', 김애란 소설 '가리는 손' 본심에

중앙일보 2017.08.21 00:15
 <미당문학상 후보작>
 
 이근화 - '하늘의 얼룩' 등 19편
 
 하늘의 얼룩  
 
 (…)
 
 스물 하나
 모래는 마르고 젖기를 반복해서
 곱고 가늘고 우수수 떨어집니다
 조개껍질이나 동전 따위를 숨기고 있습니다
 당신의 거친 발을 기억합니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이
 길고 검은 얼굴이 지나갑니다
 
 마흔 둘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두 개로 세 개로 네 개로 갈라집니다
 나는 혼자입니다
 무겁고 지루하고 새로운 날들입니다
 두 개의 커다란 눈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누구도 깨어 있지 않습니다
 
 일곱
 날 향해 짖지 마십시오
 나는 열쇠이자 행운
 나는 벼락이자 초콜릿
 나는 입술이자 종아리
 나는 살아남겠습니다
 나는 죽지 못하겠습니다
 거대한 얼룩입니다
 사소합니다
 
 ◆이근화 
 1976년 서울 출생. 단국대학교 국문과, 고려대 국문과 박사. 현재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차가운 잠』『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윤동주문학상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시와세계 작품상, 현대문학상 수상.
 
 
 #내가 읽은 이근화 -송종원 예심위원 
 이근화의 시는 조금 엉뚱해 보일 때가 있다. 짐작과는 다른 길을 간다는 말이다. 가령,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던 화자가 돌연 죽음에 대해 가볍게 농담을 늘어놓기 시작하거나, 갈치의 외양에 관해 말하던 이야기가 문득 무거운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식이다. 시라는 장르가 늘 의외의 것을 말하는 데 관심을 두지만 이근화 시의 탄력은 남다르다. 그녀는 의미로서의 변화를 말하기보다 사실로서의 변화를 읽어내는 시인이며, 변화가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도 변화의 기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우리들의 지지부진한 꿈과 기다림을 다독이며 어둡고 메말라 보이는 삶에서도 누군가 함부로 부정할 수 없는 빛과 사랑을 길어 올린다.  
 익숙한 분별과 거리를 두고 사물과 세계를 대하는 시인의 모습은 마치 두려움 없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근화의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삶을 조금 더 긍정하게 된다. 처음도 끝도 정해지지 않은 혼돈과 방황이 삶의 귀한 손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삶을 멀리서 바라보며 사는 시인이 허무한 깨달음과 헛헛한 잠언을 말할 때, 삶의 입술과 강렬히 입맞춤한 시인은 뜨거운 탄식과 토하지 못한 울음을 제 속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집어 삼킨다. 그리고 그것이 영혼의 상처와 치유의 기미를 동시에 기록하는 시를 만든다. 시와 관련한 이 중요한 진실 역시 나는 이근화의 시에서 배웠다.
 
 ◆송종원 
 문학평론가.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평론 등단. 고려대 국문과 박사.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김애란 - '가리는 손'(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본다. 해수면이 어제보다 조금 솟아 있다. 오전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십자가도 물에 젖는다. 낮에 시장에서 사온 우럭 두 마리를 도마로 옮긴다. 칼 쥔 손에 힘을 주자 생선 뼈와 근육, 살 으스러지는 감촉이 몸 전체로 번진다. 손아귀 속 떨림이 흐린 원을 그리며 내 몸 가장 먼 데까지 퍼진다. 반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면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기이되 아주 오랫동안 어겨온 금기를 깨는, 죽은 것을 죽이는,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가 인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 대파와 생강, 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은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먼저 미역국에 쓸 육수를 내야 한다. 뼈 국물. 어릴 때 나도 뼈를 고아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랐다. 그중에는 가물치나 미꾸라지처럼 생물을 통째 곤 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강릉 분이라 우리집은 생일에도 미역국에 양지 대신 우럭을 넣었다. 독립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한다. 특히 내 생일과 애 생일에 그렇게 한다.
 
 젖 뗀 뒤 재이가 처음 먹은 음식은 흰 쌀죽이었다. 첫돌 무렵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 입안에 새싹처럼 작은 흰 뼈가 돋았다. 인간이 가진 뼈 중 유일하게 바깥으로 드러난 거였다. 재이는 이유식에 잘 적응했다. 말을 배우듯 난생처음 접한 ‘맛’들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생각과 판단이 깃든 얼굴로, 오물오물 턱 근육을 움직이면서. 생각의 그물 짜기, 감각의 실뜨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땐 혼자 힘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레이스를 펼쳐 보이듯 나를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재이, 사람 다 됐네!” 하고 놀려대듯 칭찬해줬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짐승 만지듯 손바닥에 힘을 실어 쓱쓱 쓰다듬었다.
 
 ◆김애란
 1980년 인천 출생. 한예종 연극원 극작과.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내가 읽은 김애란 - 박인성 예심위원
 '달려라, 아비'에서 아버지에 대한 딸의 표정에서 시작된 김애란 소설이 이제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을 짓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그러나 그것은 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부모조차도 다가가기 힘든 몰이해에 대한 것으로, 한층 입체적이며 깊이 있는 시선과 물음을 제시한다. 이는 김애란의 소설적 궤적이 그동안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깊어졌다는 점을 짐작케 해준다. 나의 가장 가까운 존재가 나도 본적 없는 낯선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적대와 혐오를 앓고 있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이 동남아 혼혈이라는 이유로 혹은 2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겪을지 모르는 온갖 외부의 편견이나 오해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있어 거꾸로 아들 ‘재이’가 타인의 폭력에 대하여 무감각할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노년에 대한 또래들의 혐오에 동조해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의 무게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재이의 ‘가리는 손’ 아래의 숨겨진 표정을 애써 짐작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인간에 대한 단순한 논리나 일반적인 합리성으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으며 부모자식의 관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맥락들에 대한 요구로 나아간다. 그것은 단순히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결코 손쉽게 타협할 수 없는 시대성과의 싸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대를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보다 뾰족한 이해가 내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치열한 싸움의 시작임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가리는 손’은 우리 시대를 적극적으로 ‘가리키는 손’이기도 하다. 
 
 ◆박인성
 서강대학교 국문과 박사. 문학평론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계간지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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