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련한 미황사의 추억

중앙선데이 2017.08.20 01:18 545호 31면 지면보기
외국인의 눈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에 오기도 전부터 막연한 꿈 하나가 있었다.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절의 통나무 바닥에 앉아서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스님들과 한국식 불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거였다.
 
드디어 절 문 앞에 배낭 메고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날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템플스테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산사 체험을 할 수 있는 절이 표시된 지도를 보고 전화번호 알아내서 직접 문의해야 했던 때였다. 일부러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절을 택했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 있는 절이었다. 서울 주변이면 외국인 체험자가 많을 테고 외국인을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 과정만 있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목포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시골 버스 두 번 타고 꼬박 하루 걸려 아름다운 미황사에 도착했다. 그 많은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드디어 오랜 꿈을 실현하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마지막 계단을 밟기도 전에 먼 곳에서 어떤 스님이 “웰컴”이라고 외치며 내 쪽으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스님은 전부터 영어를 쓰고 싶었지만 그 절이 서울에서 너무 멀다 보니 외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아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드디어 외국인인 내가 절에 도착하자 스님은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하셨던  것이다.
 
영어에서 도망가고 싶어서 지리적으로 가장 먼 절을 일부러 선택한 나로서는 조금 낙담이 됐지만 “이게 첫 번째 수행”이라 생각하고 순순히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 얼마 안 되어 스님들 사이에서 내가 영어보다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말이 퍼져서 우리는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세 번째 날 드디어 10년 넘게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스님들과 수행하러 온 사람들과 바닥에 둘러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한국어로 불교의 심오한 개념에 대해서 대화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옛날 수묵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산하는 날이 됐다. 스님은 “앞으로 어디 가든 어디 살든 절이 영원히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로 한 번도 못 찾아갔지만 아름답고 고요한 미황사를 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마이클 엘리엇
무료 유튜브 영어 학습 채널·팟캐스트 ‘English in Korean’운영자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