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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제재 받는 나라? 북, 시장경제화 90년대 중국 수준”

중앙선데이 2017.08.20 01:09 545호 14면 지면보기
북한 전문가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의 평양 방문기
지난 5월 하순 평양시민들이 대동강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밤 뱃놀이를 즐기는 것을 유람선 위에서 촬영한 장면. 하루에 여러 척의 대형 유람선이 대동강을 떠다니며 영업한다.

지난 5월 하순 평양시민들이 대동강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밤 뱃놀이를 즐기는 것을 유람선 위에서 촬영한 장면. 하루에 여러 척의 대형 유람선이 대동강을 떠다니며 영업한다.

진징이 교수

진징이 교수

“북한의 시장경제화는 중국의 1990년대 초반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인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가 지난 5월 하순 평양을 방문하고 온 뒤에 내린 결론이다. 상품 거래가 활발해지고 군데군데 식당을 비롯한 자영업 매장이 생겨나는 등 3년 전 방북했을 때만 해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평양에서 목격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는 나라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평양 경제는 활기를 띠고 돌아가고 있다는 게 진 교수의 관찰이다.

5월에 가보니 3년 전과 크게 달라
김정일 요리사 후지모토 초밥집 등
시내 곳곳에 크고 작은 식당 생겨

택시는 줄지어 손님 기다리고
거스름돈 1달러는 닳아 너덜너덜

기관에 자율성 줘 시장경제 실험
농업 도급제로 농민이 생산물 처분

중국에 대해서도 초강경 자세
원유 끊어도 상당기간 버틸 것
제재론 한계, 변화 유도해야

 
진 교수는 또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김정일 체제와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인식 아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체제가 경제적 성과와 안정에 따른 대내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초강경 자세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김정일 시절만 해도 핵협상의 여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위기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 결국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달라진 북한을 상대로 하는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진 교수와의 일문일답.
 
노동신문 사옥 입구에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노동신문 사옥 입구에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평양 교외 장천 남새전문협동농장 부속 유치원에서 TV 만화영화를 보는 어린이들.

평양 교외 장천 남새전문협동농장 부속 유치원에서 TV 만화영화를 보는 어린이들.

김정일 생전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왼쪽)가 최근 평양 중심부에 다카하시란 이름의 초밥집을 열었다. [사진 진징이]

김정일 생전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왼쪽)가 최근 평양 중심부에 다카하시란 이름의 초밥집을 열었다. [사진 진징이]

 
평양은 어떻게 달라져 있던가.
“1980년대부터 20차례 이상 평양을 방문했는데 이번 방북에서 느낀 변화가 가장 크다. 솔직히 말해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상업이 활발해졌다. 3년 전 평양에 갔을 때만 해도 호텔 밖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곳은 고려호텔 앞의 식당 몇 군데밖에 없었다. 이번에 가 보니 시내 곳곳에 크고 작은 식당들이 생겨났다. 몇 군데 들어가 먹어 보니 깨끗하고 음식도 괜찮고 종업원의 서비스도 친절했다. 외국인들뿐 아니라 평범한 평양시민들도 자유롭게 와서 외식을 즐겼다. 메뉴 종류도 다양했다. 과거 김정일 생전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개업한 초밥집도 영업이 잘되고 있었다. 그 밖에 각종 음료나 간식거리를 파는 간이매대도 여기저기 생겼다. 택시가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도 변화다. 호텔 앞뿐 아니라 시내 주요 건물 등 손님이 있을 만한 곳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릴 정도다. 평양역 앞에서는 장거리 손님을 호객한다고도 했다. 택시는 달러나 위안화를 받는데 거스름돈으로 내주는 1달러짜리 지폐가 닳아서 너덜너덜했다. 그만큼 돈이 돌고 있다는 증거다.”  
 
고강도 제재 속에서 경제에 활기가 있다는 게 의외로 들리는데.
“더 놀란 건 광복거리의 대형 쇼핑센터에 갔을 때다. 중국 백화점이나 마트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다양한 상품이 팔리고 있는데 3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물건이 중국산 제품이었다. 지금은 자국산으로 바뀌었다. 중국 자본과의 합작 업체인데도 중국 제품이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업체 관계자는 ‘중국 제품을 퇴출했어요’라고 말했는데 강제로 중국산을 몰아낸 게 아니라 경공업 제품의 국산화가 이뤄지면서 저절로 일어난 현상이라고 했다. 제품 포장이나 디자인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된장·고추장을 빨간색 사각 용기에 담아 파는 것은 상표만 빼면 한국산 제품과 흡사해 흥미로웠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무엇인가.
“김정은 체제 이후 시장경제의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다. 각급 기관이나 행정단위, 기업들에 권한을 줘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식당이 많이 생긴 것은 각급 기관이 독자 경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체육성만 해도 내가 가 본 식당을 비롯해 평양 곳곳에 식당을 차렸다고 들었다. 국산화가 급속히 이뤄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마트 매장에 진열된 소주만 해도 지방·기업별로 80여 종류나 됐다. 평양 교외의 장천 남새전문협동농장을 방문했는데 포전담당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종의 도급제 개념인데 일정량 이상의 생산물은 농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했다. 이제는 북한 농촌 전역에 보급됐다고 한다. 그러니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 초기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와 같은 농업 부문에서의 도급제였다.”
 
그럼 북한도 개혁에 착수했다는 얘기인가.
“나는 북한식 개혁이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다만 개혁이란 용어를 쓰지 않을 뿐인데 내가 만난 북한 학자들은 혁신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권한과 자율성을 각급 단위에 줄 것 같으면 보다 더 과감하게 풀라는 내용의 논문이 김일성대학 학보에 실릴 정도다. 대체로 북한 경제의 시장화는 중국의 90년대 초반 수준에 있다고 본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선 부동산 거래가 불가능했는데 지금 북한에선 아파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평양 이외의 지방은 여전히 경제난을 겪고 있지 않나.
“지방은 아직도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평양에서 일어난 변화가 다른 지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시장경제 요소의 확산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김정은 집권 이래 곳곳에 특구를 설치하고 있는데 특구를 중심으로 이런 식의 개혁이 빨리 진행될 수 있다.”
 
김정은식 핵·경제 병진노선이 성공하고 있다는 뜻인가.
“북한의 경제 발전이 어느 정도 일어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본다. 폭발적 수준의 고도성장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려면 자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자면 대외 개방이 필수적이다. 설령 개방하려는 의사가 있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에서 어떻게 해외 자본이 들어오겠는가.”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 아닌가.
“요즘 북한에서 발표되는 글들을 유심히 보는데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과거 김정일 정권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타협의 여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그럴 의사가 없고 초강경 자세다. 핵무장을 끝까지 밀어붙여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받겠다는 의지가 과거와 다르다. ‘내가 강하게 나가면 미국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신한 큰 오산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도 초강경 자세다. 최근 조선중앙통신의 노골적 비판은 김정일 정권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한에 가서 본 TV나 언론 매체에서는 중국이란 글자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과거의 북한과 완전히 다른 체제란 점을 인식하고 대북 전략을 짜야 한다. 어느 정도 경제가 안정되면서 대내적으로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대외적으로는 초강경 자세로 나오고 있다.”
 
중국이 원유 중단 등 대북제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오래 못 버티고 손들고 나오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상당 기간 버틸 능력이 있다. 설령 못 견디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며 손들고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김정은 체제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이 올 때 북한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제재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북한의 일반 국민이다. 제재로 고통 받게 되면 국제사회를 향해 적개심을 갖게 되는데 그 적개심이 극한에 이를 때 뭐가 터질지 알 수 없다. 그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제재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가서 눈으로 확인했지만 제재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그럼, 바람직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시장경제를 확장하며 경제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길뿐이다. 북한인의 관념에는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식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안심하고 먹고살 수 있도록 보장되면 북한도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압박만 할 게 아니라 이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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