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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만나려면 신나야…두둥실 날아오릅시다

중앙선데이 2017.08.20 01:02 545호 8면 지면보기
[정재숙의 공간탐색] 불꽃 춤꾼 안은미 연습실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화가인 안충기 기자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돈 없으면 굶고, 많으면 많이 먹고
세계를 떠도는 꿈틀거림이 춤
순리 저버려 인간이 고통 받아

할머니들 ‘조상님께 바치는 춤’
80년 몸에 축적된 얘기 끌어낸 것

 
이 연재물의 열 번째 주인공은 무용가 안은미(55)다. 생명의 원천, 신과 만나는 매개로서의 살아 있는 춤을 퍼트리는 영매(靈媒)다. 남녀노소 모든 사람을 무대에 세워 신나고 재미있는 춤으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몸의 인류학’은 한국을 넘어 세계 춤판에 회오리친다.

천장 높고 기둥 없는 주유소 지하실 공간을 춤 연습실로 꾸며 24시간 소음 걱정없이 뛰고 구르고 기며 한껏 원하는 몸짓을 내지를 수 있다. 긴 한쪽 벽은 거울, 작은 벽면은 공연 의상과 소품을 담은 책장형 상자함이 늘어섰다. 그림 밑 부분은 공간을 나눠 쓰는 최영모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다. 안충기 기자·화가

천장 높고 기둥 없는 주유소 지하실 공간을 춤 연습실로 꾸며 24시간 소음 걱정없이 뛰고 구르고 기며 한껏 원하는 몸짓을 내지를 수 있다. 긴 한쪽 벽은 거울, 작은 벽면은 공연 의상과 소품을 담은 책장형 상자함이 늘어섰다. 그림 밑 부분은 공간을 나눠 쓰는 최영모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다. 안충기 기자·화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춤꾼 안은미의 연습실답다. 서울 서빙고동 남경주유소 지하실이 그가 단원들과 몸을 달구는 수련장이다. 기름을 파는 집 밑에서 그는 에너지를 불사른다. 330㎡(약 100평)쯤 되는 공간은 단출하다. 한쪽 벽을 꽉 채운 대형 거울, 공연 소품과 의상을 보관하는 책장형 상자함, 포스터 몇 장과 음악평론가 박용구(1914~2016) 선생이 주신 완당(阮堂)의 현판이 전부다. 소박한 탈의실과 작은 샤워시설이 붙어 있다. 더 넓은 안쪽 방은 2006년 함께 작업실을 찾으러 다니던 사진작가 최영모(61)씨 차지다.
 
“무용 연습장은 제약이 많은데 행운이었죠. 꽹과리를 치고 뛰어다녀도 모를 만큼 두꺼운 벽에 기둥이 없는 지하, 천장이 높고 웬만한 무대 길이가 나오는 면적에 24시간 드나들 수 있으니. 충격을 흡수하는 마루를 세 겹 깔아서 탄탄하죠.”
 
객원 안무가로 유럽 도시를 떠도는 나날이 많은 그이지만 서울에 머물 때는 단원 8명과 오후 1시부터 6시30분까지 주 5일 이곳에서 뒹군다. 다음달 초 열리는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무대, 내년 창단 30주년을 맞는 ‘안은미 컴퍼니’ 기념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틈틈이 외국 순회공연을 떠나야 하는 그의 머릿속은 ‘인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를 시험하는 격투현장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비로소 단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게 됐어요. 1년 가야 무대가 없으니 지원사업에 선정될 때까지는 한국에 못 들어오는 때도 많았죠. 돈 없으면 굶고, 돈 많으면 많이 먹고, 정착은 죽음이라며 집시처럼 세계를 떠돌아 멈추지 않은 꿈틀거림이 우리 춤입니다. ‘댄스 3부작’이 해외에 팔리면서 한숨 돌리게 된 뒤 단원을 모아 놓고 ‘죽으나 사나 한번 해 보자, 힘들면 얘기할게’ 하고는 봉급체계를 세웠어요. 안무에 경영까지 하려니 벅차지만 도와주는 이들이 많아 버텨 보는 거죠. 30주년 행사를 멋지게 하고 싶은데 후원하실 분 좀 없을까요?”
 
30년을 묵묵히 옆을 지키며 지리산 산맥처럼 춤을 일으켜 세운 음악감독 장영규, 반짝이는 ‘나이롱 뽕’ 조명으로 어둠과 빛을 오가며 톡톡 터지는 무대를 만들어준 조명디자이너 장진영을 그는 평생 벗으로 꼽았다. 이들과의 작업을 돌아보는 전시회를 열고 기록집을 내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그는 “춤을 출 때 나는 작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목숨 걸고 춤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단원들도 1초마다 뼈를 태우는 생명력으로 춤춘다. 자신들의 춤을 보러 온 손님을 위해 1초에 뇌를 1000번 굴리는 몸의 리듬, 하늘을 감동시키려 애쓰는 무대 앞에서 ‘댄스 유럽’의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안은미 컴퍼니의 공연을 절대 놓치지 마라. 당신의 삶이 윤택해질 절호의 기회이므로.”
 
안은미의 작품은 춤이나 댄스(dance)라고 하면 맛이 안 난다. 춤이 아니라 몸짓이요, 댄스가 아니라 ‘땐쓰’다. 할머니들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청소년들의 ‘사심 없는 댄스’, 중년 남성들의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댄스’ 3부작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춤꾼임을 보여 줬다.
 
“모든 몸은 할 말이 많죠. 달밤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추던 동네 마실 춤을 떠올려 보세요. 제사의식을 보면 항상 춤이 앞장서죠. 신과 만나려면 신이 나야 하고, ‘신난다’는 신이 들어오시는 걸 의미해요. 춤은 신을 만날 수 있는 메신저 같은 겁니다.”
 
그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 모신 할머니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 70~80년 산 몸에 축적된 얘기를 끌어낸 것뿐이다. “마음대로 추세요” 했더니 피가 끈적거리는 농축된 인생 한바탕이 터져 나왔다. 시각장애인과 작업한 ‘안심(安心) 땐쓰’, 키가 작은 저신장 장애 무용수와 함께한 ‘대심(大心) 땐쓰’에 이어 성(性)소수자와 만들 ‘방심(放心) 땐쓰’ 3부작 또한 춤이 태어난 본바닥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의지를 담고 있다. 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춤을 돌려주고 싶다는 안은미의 꿈은 이제 춤을 떠나 ‘몸의 인류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근대에 들어 인간은 자연의 순리를 저버렸는데 인류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건 그 때문이죠. 인간의 욕망 탓에 세계는 점점 망가져 가고 있고, 회복하기 어려운 길을 가고 있어요. 다시 돌아가는 길 중 하나가 춤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자, 춤을 춥시다’ 손을 내밉니다.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떠나요. 둥둥 날아오릅시다.”
 

안은미 하면 떠오르는 건 물방울무늬의 알록달록 원색(原色) 옷이다. 그가 타고 다니는 스쿠터도 물방울무늬로 장식했다. 그는 회오리처럼 무한 반복되는 동그라미의 활동성을 좋아한다며 “지구나 달이 왜 동그랗겠느냐”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은미 하면 떠오르는 건 물방울무늬의 알록달록 원색(原色) 옷이다. 그가 타고 다니는 스쿠터도 물방울무늬로 장식했다. 그는 회오리처럼 무한 반복되는 동그라미의 활동성을 좋아한다며 “지구나 달이 왜 동그랗겠느냐”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빡빡 깎으니 뚜껑 열려 접신의 경지로
무용가 안은미씨가 10일 오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스무 살 무렵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무용가 안은미씨가 10일 오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스무 살 무렵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은미는 언제부터 빡빡머리를 했을까. 그의 휴대전화에는 긴 머리를 묶어 올려 단정하게 정리한 대학 시절 흑백사진이 저장돼 있다. 1982년 12월 이화여대 무용학과 재학생으로 현대무용극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에 출연할 때 프로그램에 실린 프로필사진이다. 미국 유학 시절까지 생머리를 길러 고무줄로 묶고 다녔으나 92년 MBC 창작무용제에 참가하러 한국에 나와 ‘비상 의지’로 우수상을 받을 때 밀어 버렸다.
 
“뉴욕에 돌아가니까 잘 모르던 애들이 아는 척을 하며 투사 이미지가 좋다고 말을 건네요. 담대해지면 삶이 달라지죠. 뚜껑 열린 느낌이 오는 순간 접신(接神)의 경지로 뜹니다. 외부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기쁨.”
 
그는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열흘에 한 번 잔디 깎듯이 확 민다. 공연을 앞두고는 면도날로 세심하게 다듬는다. 삭발을 하니 모든 일에 정직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뭐든 흔쾌히 내려놓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의 ‘빡빡머리론’은 사진작가 윤광준씨도 빡빡 밀게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으로 버티고 있던 윤광준에게 오랜 벗인 안은미는 일갈했다. “내버려 두면 대머리고 네 손으로 밀면 빡빡인데 왜 빡빡이를 안 하느냐. 그냥 두면 타율, 깎으면 자율!”

 
안은미  
1962년 경북 영주생. 국내외를 넘나들며 파격과 도발, 신명과 재미의 춤판을 만들어 춤의 영역을 사회 전역으로 확대시키고 있는 무용가 겸 안무가. ‘춤은 모든 인간이 두 팔 벌려 우주를 껴안는 시간’이란 생각으로 예술이 아닌 치유와 화합의 매개가 되는 춤을 꾸린다.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미국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1988년 창단한 ‘안은미 컴퍼니’를 이끌며 ‘무덤’ 연작, ‘댄스 3부작’ 등을 내놨다.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제16회 한불문화상을 받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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