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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후견인 불편해도 피후견인 보호 효과적, 재산목록 작성하고 사용 내역 법원 보고해야

중앙선데이 2017.08.20 01:00 545호 7면 지면보기
성년후견제 오해와 진실
“발가락은 움직일 수 있으세요?”

후견인 되면 법원의 감독받아
거액 재산은 허가받고 사용해야
“왜 간섭하느냐”며 법원에 항의도
소모적인 금융업무는 후견인 고충
시행 4년됐는데 은행은 나몰라라

 
지난 16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요양병원 8인 병실. 서울가정법원의 김정은 가사조사관이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 K씨(40)에게 물었다. 그는 힘겹게 “어…” 소리를 냈다. 긍정의 의미인 듯 발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K씨는 뇌병변 1급 환자다. 알코올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2014년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지 30분 만에 자살을 시도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 표현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뇌손상 장애를 얻었다.
 
3년 남짓 병원에 누워 있는 K씨를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렸던 엄마와 여동생은 지난 4월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려 했는데 변호사 사무실에서 피해 당사자가 정신적 장애상태라 대리인이 필요하다며 권했기 때문이다. 김 조사관은 “현장에서 후견 대상자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와 후보 후견인 면담 내용 등을 종합해 법원에서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정되면 마음대로 종료 못해
성년후견제도의 이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시행 초기엔 재산이 많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사회 각계각층에 부양이 필요한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도움을 주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K씨처럼 재산이 없어도 소송을 내거나 보험금 수령 등의 필요에 의해 가족들이 후견을 신청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대법원에 따르면 후견개시 사건 접수 건수는 2013년 637건에서 지난해 3209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도에 대한 이해 없이 필요에 따라 섣부르게 신청한 뒤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후견 사건을 전담해 온 서울가정법원의 전현덕·고선영 조사관과 전문가 후견인으로 활동 중인 이현곤·송인규 변호사, 김효석 법무사에게 성년후견 신청인들이 어려움을 겪거나 오해하기 쉬운 부분에 대해 물었다.
 
성년후견이 개시되면 법원은 후견감독을 시작한다. 후견인에게 피후견인의 재산목록을 작성하게 하고 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1년에 한 번씩 보고하게 한다. 피후견인이 적절한 보호를 받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다. 하지만 이조차도 모르고 성년후견을 신청하는 이가 의외로 많다. 전현덕 조사관은 “친족 후견인들을 만나 보면 절차가 복잡하고 어렵다며 항의하는 이가 종종 있다. ‘왜 우리 가족 일에 간섭하느냐’며 따지는 경우도 생긴다. 후견인의 권한만 생각하고 의무에 대해선 모른 채 신청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불만의 상당 부분은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부분에 집중된다. 후견인일지라도 법원이 정해 준 액수 이상의 돈을 한꺼번에 쓰려면 별도로 재판부에 권한 초과행위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선영 조사관은 “부부 중 한쪽이 후견인이 되는 노노(老老) 후견 유형에 이런 분이 많다. 통상 재산 대부분이 부부 중 한쪽에 몰려 있는데 성년후견을 신청하면 지금까지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쓰던 재산에 경계가 생긴다. 당황하는 분이 많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피후견인 재산 사용에 제약을 받기는 하지만 부부 생활의 합당한 범위 내라면 후견 개시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한두 차례 감독을 통해 분리해서 사용하도록 하면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단 후견이 시작되면 가족들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점도 신청인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다. 민법상 성년후견 개시 요건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이다. 종료 요건은 ‘개시의 원인이 소멸된 경우’다. 즉 정신적 제약이 호전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하기 싫다’는 이유로 후견 대상자에 대한 후견을 종료할 수 없다는 얘기다. 201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서울가정법원에서 정신상태가 좋아졌다며 후견을 종료한 사건은 1건이었다.
 
은행이나 보험사 등 금융권과 관공서의 후견제도에 대한 몰이해도 후견인들이 부딪히는 벽이다. 성년후견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대형 은행에서는 피후견인 명의로 체크·신용카드 발급 및 사용이 중단되며 인터넷뱅킹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농협 등 극소수 은행에서만 체크카드 및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이 가능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 창구업무를 제외한 인터넷뱅킹·텔레뱅킹, ATM을 이용한 비대면 거래는 금지된다. 피후견인 본인의 금융 보호를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도 “성년후견이 시작되면 후견인과의 대면 거래가 원칙이다. 판결문에 후견인이 ‘(중대한) 재산 처분’을 제한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인터넷뱅킹·신용카드 발급 안 돼
하지만 후견인 입장에선 생활비를 인출하거나 소소한 지출을 할 때조차 매번 은행 창구에서 후견등기부등본을 제시하고 돈을 찾는 것은 지나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리권을 얻어 보다 편하게 피후견인을 부양할 목적으로 후견을 신청했는데 금융기관의 경직된 대응으로 소모적인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효석 법무사는 “후견인 업무 중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게 돈 관리다. 아파트 관리비, 임대료 등 돈 쓸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서류를 갖춰 은행 창구로 가야 한다. 자동이체도 안 된다. 신상 보호에 신경 써야 할 후견인들이 금융업무를 하다 지쳐 버린다”고 말했다. 이현곤 변호사는 “창구 직원들이 후견제도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번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일부 사람은 후견인을 마치 재산을 빼돌리는 도둑놈 보듯 대하기도 한다. 은행연합회나 금융감독원 등에서 후견제도에 대한 표준화된 대응원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해도 성년후견으로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말한다. 후견인과 주변 가족들의 불편함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피후견인 당사자 보호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송인규 변호사의 설명이다.
 
“없는 것보다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전횡을 막고 피후견인의 생애 마지막까지 법원에서 제대로 신상이 보호되는지 감독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법정 상속 순위에 따라 후견인이 자동으로 정해졌던 금치산·한정치산제도와 달리 법원이 제3자를 포함해 가장 적합한 후견인을 선임하는 만큼 피후견인의 신상과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효과가 좋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김도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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