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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습기 이어 계란까지, 부처 엇박자 언제까지

중앙선데이 2017.08.20 01:00 545호 3면 지면보기
안전한 먹거리 위협하는 칸막이 규제
19일 세종정부청사 인근 대형 마트를 찾은 이낙연 총리가 계란 매장 앞에서 장보기에 나선 주부와 대화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9일 세종정부청사 인근 대형 마트를 찾은 이낙연 총리가 계란 매장 앞에서 장보기에 나선 주부와 대화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농협하나로마트 계란 판매대. ‘정부의 살충제 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는 안내문·검사증명서가 매장 한편에 큼지막하게 걸렸다. 바로 전날 정부가 산란계 농장 1190곳(전체 공급물량의 95.7%)에서 생산한 달걀의 시중 유통을 허용한 데 따른 조치다. 그렇지만 계란을 사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매장 직원은 “지난 연말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계란과 관련된 문제가 반복되면서 고객들의 불신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김선자(62)씨는 “정부로부터 안전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나왔다고 하니 도무지 먹거리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적합 농장 반 이상 친환경 인증
농식품부-식약처, 서로 딴소리
오락가락 발표에 갈수록 불신 커져
문 대통령, 근본적 대안 마련 촉구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식품안전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발급하는 친환경 마크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이 대표적이다. 18일까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49곳) 가운데 29곳(59%)이 HACCP 인증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HACCP 인증을 받은 전남의 한 농장에선 기준치 21배 수준의 살충제(비펜트린)가 검출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AI로 농가 출입이 금지돼 잔류 살충제에 대한 검사·관리 업무가 원활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농약 잔류 기준 만들고 13년간 점검 안 해
식약처는 13년 전인 2004년 3월 계란에 함유된 농약 성분인 비펜트린의 잔류 허용 기준(0.01㎎/㎏)을 정했지만 지난해까지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잔류 성분 검사를 실시한 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계란 잔류 물질 검사 때 농약 성분도 조사하라는 내용이 올해 초 농식품부가 보내온 공문에 처음 담겼다”고 밝혔다. 19일이 돼서야 농식품부와 식약처는 공동으로 각 시·도 부지사들과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부적합 판정을 받은 관할 산란계 농장 420곳에 대한 보완 조사를 결정했다.
 
정부 인증 마크를 받은 제품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파동 때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국가통합인증(KC)’을 받은 제품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2014년에는 농식품부의 ‘무항생제’ 인증 소·돼지 9만 마리의 고기에서 항생제가 검출됐다. 지난해에는 한국산업규격(KS) 인증을 받은 전국 초·중·고 우레탄 트랙, 인조 잔디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중금속이 발견됐다.
 
정부 조직의 고질적 병폐인 부처 간 엇박자가 이 같은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계란은 농식품부가 생산 관리를, 식약처가 유통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부처별로 각각 발표를 하고, 이마저도 혼선이 빚어졌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산 달걀과 닭고기에선 피프로닐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국내산에는 문제가 없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농식품부가 이미 국내 산란계 농장 980곳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간 상태였다. 식약처장의 안심 발언이 나온 지 나흘 만인 14일 농식품부는 “경기도 남양주 A농장 계란에서 피프로닐을 확인했다”며 계란 출하를 금지시켰다. 류 처장의 발언이 농식품부가 산란계 농장 검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이틀 뒤인 16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농식품부와 식약처의 엇박자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17일 오전 “농장 29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으나 한 시간 만에 31곳으로 바로잡았다. 식약처가 유통 단계에서 발견한 두 곳을 뺀 채 자체 조사한 29곳만 발표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장에 있는 계란은 농식품부가, 시중에 유통된 계란은 식약처가 각각 검사하는 식이기 때문에 취합이 안 됐다”고 인정했다.
 
총리실 등에서 컨트롤타워 역할 맡아야
부처 간 칸막이를 치고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행태는 사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지적됐다. 당시에도 안전성에 대한 인허가는 환경부, 살균제를 활용한 제품에 대한 안전은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가 담당했다. 카펫 세척용으로 개발된 살균제가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환경부도 산업부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도리어 사고 책임을 서로 미루기 바빴다. AI 사태 때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엇박자가 여실히 노출됐다. 지난해 말 경남 우포늪에서 AI 감염이 의심스러운 철새 폐사체가 발견됐으나 농식품부와 환경부, 경남도는 대응을 서로에게 미뤘다.
 
현재 정부의 살생물제 관리는 농식품부(살충제·농약), 보건복지부·식약처(살균제·살충제), 환경부(소독제), 해양수산부(방오제), 산업부(습기제거제) 등 여섯 개 부처에 흩어져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살생물제 관련법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부처 간 이해 관계가 달라 성사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이 1998년 ‘살생물제 관리지침’을 만들어 통합 관리를 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살생물제를 여러 부처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관리 기준도 통일되지 않아 안전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19년 살생물제 관리법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살충제 계란 파동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환경부 등 특정 부처를 뛰어넘어 살생물제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나 일본 소비자청이 그 모델이 될 수 있다. 제품 안전을 총괄하는 단일 부처가 살생물제 관련 정보 등을 수집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박태균 고려대 생명공학부 연구교수는 “중증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건 때도 초반에는 굉장히 우왕좌왕했지만 질병관리본부로 담당 기관이 통일되고 국무총리실에서 상황을 관리하면서 사태가 진정됐다”며 “이번에도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나 행정안전부 같은 기관에서 신속하게 컨트롤타워로 나서야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근본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주무부처가 농식품부와 식약처로 이원화돼 중복 발표가 되는 상황”이라며 “총리가 범정부 차원에서 이번 일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관리·감독을 비롯한 축산업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9일 농식품부를 찾아 “써서는 안 될 약품을 쓰거나 정부의 안전 조치에 협조하지 않고, 때로는 정부를 속이는 농가에 대해선 형사고발을 포함해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강기헌·김영민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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