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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겹겹이 스며든 일상의 두께

중앙일보 2017.08.20 00:05
유근택, 어떤 도서관 - 아주 긴 기다림,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44.5 x 203 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어떤 도서관 - 아주 긴 기다림,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44.5 x 203 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어떤 도서관,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06 x 194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어떤 도서관,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06 x 194cm사진=갤러리현대

 책이 빼곡한 서가가 두툼한 질감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책더미 사이로 희한한 게 눈에 들어온다. 빨래처럼 늘어진 옷가지가 여럿 걸려있는 옷걸이가 있는가 하면 서로 잔을 부딪치는 손과 손이나 각종 캐릭터를 담은 풍선 다발을 쥔 손도 있다. ‘어떤 도서관’ 혹은 ‘어떤 도서관-아주 긴 기다림’등의 제목이 붙은 이들 그림은 동양화의 전통적, 관념적인 소재 대신 일상을 적극적으로 화폭에 펼쳐온 한국화가 유근택(52) 작가의 신작이다. 

화가 유근택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개인전
도서관, 모기장 등 새로운 기법으로 그린 신작 선뵈
다음달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선
광주화루 수상기념 기존 작품 전시도

 일상에 대한 그의 접근이 새로운 기법과 함께 더욱 두터워졌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 ‘어떤 산책’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햇수로 3년 동안의 새로운 시도를 담은 신작 37점을 선보이는 중이다.   
 그중 도서관 연작은 사실적 공간인 동시에 관념적 세계로도 해석될 수 있는 도서관 풍경에 빨래 같은 일상의 요소를 배치한 점은 물론이고 두툼한 질감을 빚어낸 새로운 기법이 두드러진다. 얇은 한지를 6배접, 즉 여섯 겹으로 만든 뒤 이를 철솔로 긁어 종이 재료가 한껏 일어나게 한 위에 물을 흠뻑 적시고 그림을 그렸다. 얇은 한지가 두터운 질감으로 변환된 셈이다. 작가는 이를 “2mm도 안 되는 얇은 종이에서 공간을 끌어내는” 것이자 “한지에 공간이 스며드는”것이라고 표현했다. 
 얇은 한지에 풍성한 공간이 스며든 예로 그는 구체적 기법을 떠나 겸재 정선의 ‘만폭동도’를 들었다. “풍경화를 그린 것 같지만 비로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금강산 전체로 이어지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작품”이라며 “이런 공감각은 지금 시대 미디어가 지향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유근택, 방, 2016, 한지에 수묵채색, 145 x 145cm 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방, 2016, 한지에 수묵채색, 145 x 145cm 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방, 2016, 한지에 수묵채색, 145 x 145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방, 2016, 한지에 수묵채색, 145 x 145cm사진=갤러리현대

 달리 보면 그의 그림은 일상과 관념을 한 폭에 담는다. 모기장을 그린 또 다른 연작 ‘방’ 시리즈도 그렇다. 흔히 보는 모기장이 가볍고 투명한 것과 달리 두툼한 질감과 무게감이 두드러진다. 모기장 안쪽이 또렷이 보이지 않아 뭔가 사건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한지를 철솔로 긁는 등의 새로운 기법은 이런 모기장 그림부터 비롯됐다. 여름이면 그가 작업실에 늘상 치는 모기장, 특히 사방의 줄에 매달린 모습이 그에게는 “존재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이를 표현하고자 한 시도가 지금처럼 두터운 질감 표현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관념의 무게가 과해지는 것도 경계한다. 도서관 연작에 그려진 캐릭터 풍선 같은 게 그런 장치다. 그는 "굉장히 서사적인 주제인 도서관을 끌고 들어왔지만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고 싶다"며 "도서관이 함축하는 시간의 무거움에 대해 가벼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빨래 역시 그에게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시간과 연결된다. "축 처진 빨래가 널려 있는 걸 보면 영혼이 빠져나간 듯 기묘한 모습, 오랜 시간의 기다림에 지친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한국화가 유근택. 사진=갤러리현대

한국화가 유근택. 사진=갤러리현대

 그의 사유는 가까운 일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이는 ‘산책’ 시리즈도 작업실이 자리한 서울 성북동 주변을 매일처럼 산책하며 보아온 풍경이 바탕이다. 철솔로 긁은 것은 아니지만 두터운 색채의 질감과 그림 곳곳의 디테일이 역시나 흥미롭다. 그 중 한 작품은 해가 솟기 전 여명에 비춘 숲의 모습을 대담한 붉은 색으로 묘사했다. 또 다른 작품들에는 마치 숲 속의 숨은 그림처럼 사람이나 새 같은 것이 어딘가에 그려져 있어 그림 전체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를 더한다. 도서관 연작 역시 도서관을 자주 찾은 최근의 경험에서 나왔다.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중에 안식년을 맞아 2015년 석 달 동안 독일에 머물 때였다. 전시장에는 도서관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본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함께 배치해 공간의 입체적 느낌을 부각했다. 
유근택, 산책 - 남자, 2017, 한지에 수묵채색, 180 x 147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산책 - 남자, 2017, 한지에 수묵채색, 180 x 147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산책, 2016, 한지에 수묵채색, 148 x 158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산책, 2016, 한지에 수묵채색, 148 x 158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작가의 '산책' 연작 가운데 한 점의 부분. 인물의 모습이 숨어있는 듯 그려져 있다.사진=이후남 기자

유근택 작가의 '산책' 연작 가운데 한 점의 부분. 인물의 모습이 숨어있는 듯 그려져 있다.사진=이후남 기자

 ‘폭포’처럼 기존에 다뤄온 소재를 새롭게 다시 그린 작품도 있다. 동양화의 물은 대개 위에서 아래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이런 흐름이 그의 말마따나 “순응의 미학”을 담고 있다면 그의 폭포 연작은 도심에 곧잘 보이는 분수, 즉 아래에서 위로 솟는 물을 담는다. 한국화의 맥락에선 퍽 이채로운 풍경이다.   
유근택, 분수,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06 x 145cm사진=갤러리현대

유근택, 분수, 2017, 한지에 수묵채색, 206 x 145cm사진=갤러리현대

 9월 17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과 나란히 일상에 대한 그의 기존 표현과 접근방식을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전시가 9월 8일부터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다. 광주은행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손잡고 올해 처음 마련한 제1회 광주화루 작가상 수상 기념전이다. '화루'는 추사 김정희 제자들이 서로의 작품을 품평하던 모임 ‘회루(會壘)’의 ‘회’를 그림을 가리키는 ‘화(畵)'로 바꾼 것이다. 수상 기념전에는 그의 작품을 일종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새로운 시도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한국화가 유근택. 사진=갤러리현대

한국화가 유근택. 사진=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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