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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문재인 지지율 80%의 비밀

중앙일보 2017.08.19 02:35 종합 30면 지면보기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지지율 80%대’라는 숫자로 웅변된다. ‘산타클로스 복지’ ‘쇼(show)통’ ‘욜로(You Only Live Once) 정부’ ‘감성 포퓰리즘’ 등 신조어를 동원해 어깃장을 놓지만 견고하다. 인사 난맥, 북핵 및 탈(脫)원전 정책 등 국정 혼선에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터졌지만 흔들림이 없다.
 

정의와 공정이란 이상적 가치
돈과 싸우면 승리하게 돼 있다

누군가 정치는 쇼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시민들과 ‘셀카’를 찍고, 공식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를 부른다. 현충일엔 파독(派獨) 광부와 베트남 참전 용사를 “애국자”라고 했고, 광복절에는 “독립운동가들을 잊힌 영웅으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에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세월호 참사 유족을 포옹하며 위로했다. 각본은 없지만 연출된 흔적이 묻어난다. 대중은 탈(脫)권위적이고 친(親)서민적 행보라며 살갑게 호응한다. 진정성 있는 ‘쇼통’과 감성 정치는 대중의 머리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려 하나가 되는 동조현상을 일으킨다. 마음을 읽어내는 힘이 느껴진다. 사소한 것에 목말라 하는 대중의 갈증을 적셔 주는 것이 지도자의 자격이다. 고공 지지율의 비밀을 풀 첫 번째 열쇠다.
 
일자리·복지·부동산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가치와 지향점의 영역이다. ‘대통령을 만드는 남자’로 불린 미국 정치컨설턴트 딕 모리스는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제3의 변화가 일고 있다. 경제보다 중요한 건 건강·환경 등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둔 정책”이라고 했다(『신군주론』, 1999).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인상, 8·2 부동산 대책,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의 문재인 케어 같은 공약을 다 구현하려면 문재인 정부에서만 178조원이 필요하다. 5년간의 ‘욜로’ 정부가 끝난 뒤, 어느 날 나라 곳간이 텅 빌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하나가 서민들이 아파해 왔던 삶의 문제들이다. 나라 걱정은 이해하지만 당장 국가부도 사태가 오고, 기업들이 다 망할 듯이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라 함께 고민할 숙제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이상적 가치가 돈과 싸우면 이기게 돼 있다.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라는 점이 두 번째 열쇠다.
 
“전쟁만은 막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공허하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미국과 북한을 곁눈질해 보면 정말 그럴까 하고들 회의적이다. ‘운전석론’을 내세웠지만 시동조차 못 걸고 있는 처지는 애처롭다. 그렇다고 조수석이나 뒷좌석에 앉아 끌려다닐 순 없다. 대중은 미국에 맞장뜨는 김정은의 배포를 내심 부러워한다. 다소 허세가 끼어 있을지라도 대외적으로 당당한 지도자를 바라는 국민의 정서가 세 번째 열쇠다.
 
마지막 열쇠는 ‘사이비 보수’가 상납했다. 오늘날 자칭 보수라는 정치집단에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는 ‘정상적이고 합리적 보수 시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진보정책만 나오면 무작정 반대에 급급하다. 가진 자에게 빼앗아 퍼주는 나눠먹기 정책이라며 거품을 문다. 발전적 변화를 두려워하고 과거로만 회귀하려는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저급한 수구(守舊)일 뿐이다. 적폐라는 망신과 모욕은 자업자득이다. 시인 류시화의 말처럼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보다 심각한 장님은 없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귀머거리는 없다”는 게 사이비 보수의 민낯이다. 관용과 포용의 품격을 갖추고 사회 안정과 발전을 이끄는 걸 보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진보적 보수’가 나오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의 인기는 아주 오래갈 것이다. 진짜 보수는 보수를 보수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통탄하고 있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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