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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반성 않는 보수, 10년 뒤에도 재집권 쉽지 않다

중앙일보 2017.08.19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영원한 소장파 ‘남·원·정’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6일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예술인을 차별지원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처럼 ‘리스트(문서)’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6일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예술인을 차별지원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처럼 ‘리스트(문서)’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정병국(59) 전 바른정당 대표는 ‘원조 소장파’다. 60 고개를 몇 달 남겨 놓고 어울리지 않지만 젊은이들과 ‘소통’한다는 의미로 자랑스러워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의 체력은 소장파 못지않다.
 
‘남·원·정’은 2002년 16대 대선 ‘차떼기’ 사건 때 생겼다. 정 전 대표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개혁을 요구해 붙여졌다. 세 사람은 모두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그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함께 국빈 자격으로 이란·파키스탄·미얀마를 방문하고 13일 귀국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종로에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와 ‘청년정치학교’ 가두홍보를 했다.
 
“젊은이들 반응이 참 좋았어요. ‘우리가 참 정치를 잘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젊은층이 ‘보수의 가치와 철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잘못돼 기피한 거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그는 최근 『나는 반성한다- 다시 쓰는 개혁보수』라는 책을 썼다.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잃어버리고 기득권에 안주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창피”하게 된 상황에 대한 반성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사회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것은 같다고 봐요. 어디에 비중을 더 두느냐 차이죠. 과거 성장 위주 시대에 ‘환경’은 보수의 어젠다가 아니었어요. 그러나 더는 진보만의 어젠다가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진보 어젠다라며 멀리한 게 보수가 욕을 먹는 이유입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쟁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라는 것이다.
 
“이걸 계속 방치하고 원칙만 지킨다면, 과연 누가 이 체제를 지키겠어요. 박근혜 정부는 선거 때 중심 과제라고 해놓고는 집권한 뒤 완전히 도외시했잖아요. 그 결과 국민과 멀어져 위기를 맞은 거죠.”
 
그렇다면 집권을 하지 않아야 맞는 것 아닌가요.
“그것도 맞죠. 그렇기 때문에 각오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 바른정당입니다. 우리도 공동 책임이다, 새누리당은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하다 결국 분당했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입당 타진설로 논란을 벌였지만 어쨌거나 그런 세력이라면 당을 같이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그 당시 영입 대상도 아니었고,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받아줄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습니다. 재판을 받고 있어서. 어쨌든 합칠 거라면 분당하지 않았죠. 분당할 때와 뭐 변한 게 있나요.”
 
그 안에 뜻이 같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많죠. 그게 용기예요. 어떤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가가 중요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더 중요하죠.”
 
홍준표 대표는 내년에 바른정당이 없어질 거라는데.
“그분은 아예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니 대꾸할 필요가 없고…. 어려워요. 어렵지만 없어진다면 한국당이 더 먼저 없어지겠죠. 내년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부활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아요. 긴 호흡을 갖고 가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친노 패권주의자들은 정권을 잃고 ‘폐족(廢族)’을 선언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만든 대통령을 스스로 탄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까지 왔으면서 우리는 어느 누구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고, 박 전 대통령은 법정다툼을 계속해요.”
 
그는 “진정으로 보수가 살려고 한다면 박 전 대통령이 모든 게 제 책임이다.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고 말했다.
 
“비서가 무슨 문제가 있어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이지.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친박 중 대표적인 사람들도 책임지고 사퇴해야죠. 그래야 저는 보수가 다시 회생할 기회가 있다고 봐요. 그게 안 된 상황에서 보수가 다시 회생하려면 10년 뒤? … 정말 쉽지 않다고 봐요. 긴 목표를 향해 가야 5년 안에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지 당장 내년 지방선거, 또 3년 뒤, 5년 뒤… 이렇게 얘기하면 불가능하다. 이렇게 봅니다.”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을 맡고 계신데 인재 영입은 잘 되나요.
“쉽지는 않아요.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를 봅니다. 과거에는 다 실패한 젊은층이 오고 있어요. 정말 희망을 보고 있죠.”
 
한국당하고는 계속 경쟁 관계로 가나요.
“경쟁 관계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버린 정당이잖아요.”
 
국민의당하고는.
“다른 정당하고 관계를 통해 뭐를 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고요. 정치공학적이나 선거공학적으로 접근하면 망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가치 철학에 맞으면 찬성하고, 반대할 때는 명확하게 반대할 겁니다.”
 
최순실씨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박 전 대통령을 대표로 옹립한 게 남·원·정입니다. 천막당사도 우리가 치게 한 겁니다. 어떤 안을 가지고 가면 ‘와, 너무 좋은 안이다’. 이러셨던 분이, 다음 날 딴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당장 결정할 것이 있으면 구석에 가서 전화를 거세요. 그래서 ‘아, 박정희 시절의 원로들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 최순실·정윤회가 있는 줄은 몰랐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하실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없었나요.
“있었죠. 전임 유인촌 장관이 영화인이니까 그전 정권에서 한 행태를 척결한다면서 역으로 또 그런 현상이 벌어졌더라고요. 노무현 정부에서 진보진영이 아니라 명계남·문성근·이창동… 몇 사람이 주도했어요. 같은 진보진영 사람들조차 비난했어요. 유인촌 장관은 얼마나 당했겠어요. 장관이 돼 탕평한다면서 역으로 선을 그어 버린 거예요. 진보와 보수로. 그러니까 시끄럽죠. 저는 진짜 탕평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때처럼 리스트를 만들지는 않았어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평가하면.
“한마디로 욜로(YOLO) 정권입니다. 당장 자기만 생각하는 거예요.”
 
개헌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교과서에서 대통령중심제는 의사 결정이 신속하고 모든 정책이 지속 가능하다고 배웠잖아요. 그런데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정권이 바뀌면 정책들이 다 바뀌어요. 같은 당에서도 바뀌어요. 분화되고 다원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의원내각제가 맞다고 보고요. 이건 꼭 바꿔야 합니다.”
 
그는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선거가 끝난 뒤 김무성 당시 재정국장의 소개로 비서실에 들어가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제2부속실장,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김길환 의원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는 바람에 고향인 양평-가평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처음 당선돼 20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S BOX]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수배·도피 … 안기부 취조실서 6·29 맞아
“우리 아버지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시는 분이에요. 머슴도 하셨고. 그런데 제가 학교 다닐 무렵 그 동네에서 농사를 제일 많이 짓는 분이셨어요.”
 
그래도 농사꾼에게 서울 유학은 쉽지 않았다. 정병국 의원은 아버지와의 ‘투쟁’ 끝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형님을 따라 여주(현 양평)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학생운동으로 수배돼 경주~포항 도로공사장 숙소에서 10·26 소식을 들었다. 1980년에는 ‘택시운전사’처럼 광주 잠입을 시도하다 길목마다 차단해 익산에서 포기했다.
 
6·29는 안기부 취조실에서 맞았다. 아버지는 고1 때 작고했다. 정 의원 때문에 매일 형사들이 찾아오자 어머니도 견디지 못하고 상경했다. 동네 사람들이 “극성맞게 서울로 유학보내더니 빨갱이를 만들었다”고 손가락질했기 때문이다. 단칸방에 어머니와 형, 누나, 여동생 둘이 함께 살아야 했다. 정 의원은 입주 과외를 했다. 93년 정 의원이 청와대 제2부속실장이 된 뒤 관사로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께 못할 짓을 많이 한 거죠. 스트레스성 당뇨로 돌아가셨어요. 절대 시골에 안 내려가셨는데 96년 시골집을 새로 지은 뒤 가셔서 그동안 못 봤던 친인척, 동네 사람들 다 보고 4개월 뒤 돌아가셨어요.”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대학생 둘째 아들이 그의 사무실에서 정치수업을 받았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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