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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21) 원금 보장의 함정] 원금에 집착하다 ‘노후빈곤 쇼크’ 올 수도

중앙일보 2017.08.19 00:02
원금 보장형 퇴직연금 수익률 2% 밑돌아... 4~5%는 돼야 안전한 노후생활 보장
 
원금 보장.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다. 언제 돌발사태가 터질지 알 수 없는 투자에서 원금 보장은 매력적이다. 시장이 불안할 때라든가 바닥을 헤맬 때 원금 보장 상품은 인기를 끈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다. 수익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필요 노후자금을 모으지 못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 원금 보장의 허실을 짚어보자.
 
퇴직연금 95%가 원금보장형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퇴직금을 비롯한 은퇴자금은 까먹어선 안 되는 돈이다.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한 건 그래서다. 반면 목돈 형성 등 증식이 목적인 일반 자금은 그와 달리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굴려야 한다. 자금 운용에서 안전제일주의를 따르는 사람에게 원금 보장은 든든한 복음으로 들린다. 위험이 큰 불확실성의 시대에 원금을 보장해준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실제로 적립금이 15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은 대부분이 원금 보장형이다. 퇴직금만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굳건히 깔려 있다. 퇴직연금은 사업체에서 매월 일정액을 특정 금융회사에 맡겨 운영한 뒤, 운영 성과를 토대로 퇴직 후에 퇴직금을 연금 형태로 주는 제도다.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DB형은 회사가 금융회사에 돈을 맡겨 불린 뒤에 모인 적립금으로 퇴직급여를 주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DC형은 근로자가 운용을 한다. 회사는 매년 퇴직금의 일부를 정산해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로 넣어준다.
 
지난해 기준으로 DB형은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한 비중이 95%에 이른다. 회사가 종업원들의 퇴직금을 손실 위험 부담을 안고 불려주려고 애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DC형도 마찬가지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노후의 종잣돈을 지키고 싶다는 심리 때문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한다. DC형 가입자의 퇴직연금 적립금 가운데 원리금보장 상품에 투자한 비중이 78.9%에 달한다.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한 비중은 16.7%에 불과하다.
 
문제는 DB형과 DC형을 가리지 않고 수익률이 낮다는 데 있다. 지난해 DB형 수익률은 1.68%에 그쳤다. 2015년에는 2.11%였다. DC형 수익률은 2015년 2.38%, 지난해 1.45%에 불과했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으면 회사가 근로자에게 줘야 할 퇴직급여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DC형에 가입한 근로자의 경우 기껏 퇴직연금에 가입했는데도 물가상승률보다 못한 수익을 얻게 된다.
 
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원금 보장형 퇴직연금은 다른 데 투자하면 낼 수 있는 수익, 즉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보험 같은 장기 상품은 원금 보장이 무의미할 수 있다. 연금보험의 원금 보장은 아무 때나 원금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연금을 수령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만약 일반 금융상품을 수익률 연 3%로 월 100만원씩 20년 붓고 5년 거치 후 연금을 탄다고 할 때 적립금은 3억8000만원에 누적 수익률은 58%에 달한다. 연 2%만 해도 적립금은 3억4000만원, 누적 수익률 41%다. 여기서 20년 간 납입하고 5년 거치 후 이자 없이 원금만 탄다고 할 때 원금 보장 2억4000만원에 대한 기회비용은 수익률 3%의 경우 1억4000만원, 2%는 1억원이다. 더구나 이 사례는 물가를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엄청난 실질적 손해를 입는 결과가 된다.
 
단기 상품이 원금을 보장한다면 그런대로 봐 줄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원금 보장형 마케팅이 먹혀 드는 건 투자자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다. 개인은 주가의 바닥 국면에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엔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그래서 원금 보장형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많이 팔린다. 지난 2008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고, 2011년 10월 유럽의 재정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 이 상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원금은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돈 버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원금 보장 상품은 주가 높을 때 사야
원금 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증시가 좋을 때 원금 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주가가 오랜 박스권을 벗어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요즘이 그렇다. 그러나 바닥 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를 상대로 원금 보장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원금 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셈이다. 경제엔 공짜가 없듯이 투자의 세계에서도 저절로 주어지는 원금 보장이란 없다. 목돈으로 큰 돈을 단기적으로 투자할 때 원금 보장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적립식으로 다달이 얼마씩 부어나갈 때엔 어느 정도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 그 대신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시간은 수익과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전문가들은 연금의 경우 연간 수익률은 최소 4~5% 수준이 돼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은퇴 후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준 40% 이지만 퇴직연금은 1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의 권장 소득대체율은 70%이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원금 보장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원금 보장을 고집하다간 나중에 생활비가 모자라 ‘노후빈곤 쇼크’를 겪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결국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실적배당 투자상품 비중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박스기사] 원금 보장 심리 퇴치법 - 주가 확인 자제해 ‘최신 효과’ 차단해야
인간은 최신 정보와 충격적인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걸 ‘최신 효과’라고 한다. 예컨대 주가 하락과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신문기사를 봤을 때 최신 효과가 작용해 앞으로의 위험을 과대평가한다. 반면 주가 상승 기간엔 기회를 과대평가하고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사람은 주가 상승을 암시하는 정보를 무시하고 손실회피 심리에 빠진다. 원금 보장 상품을 사는 건 그래서다.
 
대표적인 원금 보장 상품이 저축성 생명보험이다. 이 상품은 사고나 질병 등을 보장해주고 납입한 보험금 원금과 확정이자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비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채권도 비슷하다. 채권투자자는 손실회피 심리 때문에 채권에 손을 댄다. 채권은 투자포트폴리오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재산 대부분을 채권이나 부동산·생명보험에 묶어두는 것은 좋지 않다. 주식은 다른 투자상품에 비해 수익률이 높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채권이나 생명보험에 투자하는 것은 주식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손해가 두려워 안전자산에 가진 돈을 집중시키는 것은 물가상승률과 세금까지 감안할 때 앉아서 재산을 까먹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손실이 두려워 섣불리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최신 효과를 차단하면 된다. 매일 주가 움직임을 확인하거나 주가에 관한 기사를 수시로 찾아 읽는 것을 삼가라는 이야기다.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당연히 자산의 안전성이 최우선이다. 투자한 돈이 필요할 때가 다가올수록 금고에 닥칠 위험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은퇴 후반에 쓸 돈만큼은 수익성을 생각해 위험자산에 묻어두어야 한다.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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