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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2) ‘자유견’한테 들켜버린 내 마음

중앙일보 2017.08.18 12:00
“콩국수 좋아합니꺼? 읍내에 진짜 그슥한 식당 있는데예.” 문맥으로 보아 맛있다는 얘기이기는 한데, 도대체 여기 ‘그슥’은 얼마나 살아야 익숙해질까? 전라도 ‘거시기’와 경상도 ‘그슥’. 참 거시기 하면서도 그슥하다.

어느날 집으로 들어온 주인없는 개 세마리
키우는 일 포기한 걸 알아채곤 스스로 나가

 
당개식당? 단개식당? 영농조합 김 사장님이 전화로 알려준 식당 이름은 헤맨 끝에 찾아가 보니 ‘단계식당’이었다. 한 방에 ‘단계’로 알아듣기는 애초에 힘든 이름이다. 음식 맛의 수준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데, 그 끝을 보여주는 식당? 지리산 아래 산청에서 자란 친구 놈에게 얘기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산청군에 가면 단계리라고 있다고, 아마 사장님이 그쪽 출신일 거라고 한다. 콩국수와 해장국으로 이름난 식당이다. 맛? 오~ 엄지 척!
 
대문을 열어두고 점심을 먹으러 간 게 잘못이었다. 해장국과 콩국수의 끝단 계를 맛보고 막 돌아온 주인 없는 집 마당에 웬 단개(短身의 개) 세 마리가 자기들이 주인인 양 어슬렁대고 있다. 어미와 아비, 그리고 아비를 더 닮은 새끼. 어미가 깨끗하게 핥아줬을 새끼를 제외하고 어미 아비 둘 다 털이 꼬질꼬질하고 목줄이 없으니 주인 없는 유기견 내지 자유견(?)인 듯했다.
 
 
포월침두 골짜기까지 누가 올까 싶어 자주 대문을 열어두고 외출한다. 가져갈 것 없는 집에 든 오갈 데 없는 강아지들. 그런데 오갈 데 없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이었다. [사진 조민호]

포월침두 골짜기까지 누가 올까 싶어 자주 대문을 열어두고 외출한다. 가져갈 것 없는 집에 든 오갈 데 없는 강아지들. 그런데 오갈 데 없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이었다. [사진 조민호]

 
 
내 외로움 달래주길 원했지만 
 
혼자 포월침두하는 마당에 강아지가 있었으면 했다.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지만 외로움은 몸이 먼저 알았다. 작은 소리에 놀라고, 잠은 늘 얕았다. 강아지가 내 외로움을 반려해줬으면 했다.
 
급히 카메라를 꺼내 수십장을 찍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제법 자세를 취해주신다. 이놈들과 같이 살아볼까. 내 인생에도 몇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기에 같이 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생명을 보듬는 일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만큼이나 강아지도 가볍지 않다. 일 보러 서울 올라가 잠시라도 포월침두를 비우면? 병이 나면? 겨울에 칼바람이 찾아오면? 멧돼지가 내려오면? 괜한 충성심에 싸우다 다치면?
 
“아, 머리 복잡해. 이 놈들은 왜 갑자기 찾아와서 내 평화를 휘저어 놓는 거야! 겨우 찾은 심플라이프를 왜 다시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키우는 일을 포기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대문밖을 나설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끼고 아끼던 ‘오예스’를 꺼내 골고루 나눠주었다. 오~ 예스! 하며 다 받아먹고 대문을 나서던 어미가 미안해 하고 있는 나를 휙~ 돌아본다.
 
“별 걸 다 미안해 하네. 우리가 언제 너랑 같이 살재니? 웃겨.” 하는 표정이다. 잘 못 본 건가? 아냐, 분명 그 표정이었어. ㅠ
 
그러네. 내가 혼자 헛소리를 하고 있었던 거네. 떡 줄 개들은 생각도 없는데, 걔들이 듣기엔 내 소리가 다 개소리였네. 콩국수 말고 마리면(面)에 가서 보신탕이나 먹고 올 걸.
 
 
혼자 있어 외로울까봐 가끔 나와 놀아주는 엄지 손톱만한 청개구리. 마당에 나와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한 시간씩도 앞에 앉았다 간다. ‘뽕짝’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사진 조민호]

혼자 있어 외로울까봐 가끔 나와 놀아주는 엄지 손톱만한 청개구리. 마당에 나와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한 시간씩도 앞에 앉았다 간다. ‘뽕짝’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사진 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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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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