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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블랙코드] 보여주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것

중앙일보 2017.08.18 02: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지난해 상영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천주교 신부의 상습 아동 성추행을 폭로한 미국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예리한 문제의식, 촘촘한 스토리, 사실적인 연기 등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다.
 
국내 개봉 당시엔 엉뚱한 지점에서 또 화제가 됐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장면이 안 보인다는 이유였다. 첫째 러브라인이 없다. 기자끼리 혹은 기자·취재원 간 달달한 로맨스가 빠지다니, 한국에선 상상 불가다. 둘째 트라우마가 없다. 성폭행 사건에 이토록 매달리는 건 유년기 비슷한 상처가 있어서라는 게 우리네 상식인데, 영화 속 인물들은 미친 듯이 취재만 한다. 왜? 그게 직업이니깐. 셋째 성폭행 장면이 없다. 가학적 묘사가 들어간 회상 장면을 삽입시켜 관객에게 “저런, 쳐 죽일 놈”이란 공분을 일으킬 수 있건만 영화엔 피해자의 건조한 증언만 나온다. 함부로 자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않은 것 때문에 더 훌륭한 영화”라고 평했다.
 
영화뿐이랴.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액면만 보면 옳은 말이나 미국은 꽤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엔 원인 제공자인 북한을 향한 따끔한 질책이 없었다. 규탄하지도, 성토하지도 않고, 구체적 방법론 없이 한가로이 ‘촉구’만 했다. 칼 들고 설치는 이(북한)는 놔둔 채 그 사람 혼내겠다는 사람(미국)만 말리는 꼴이랄까.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역대 정권을 통틀어 가장 균형된 인사”라고 자평했다. 문재인 정부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119명 중 대선 캠프나 노무현 정부 출신은 현재 무려 50여 명에 이른다. 높은 지지율에도 인사만큼은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최근 박기영씨 낙마와 관련, 유감 표명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문 대통령은 "탕평 인사”라고만 했다. 인사시스템이 왜 엉망인지, 탁현민 행정관은 청와대에 계속 남는 것인지, 무엇보다 ‘인사 5대 원칙’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말하지 않는 게 때론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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