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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중앙일보 2017.08.18 01:49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원인과 결과가 뒤섞여 헷갈릴 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빗댄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질문의 답은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라는 심오한 궁금증을 내포하고 있지만 실익은 없다. 고대 철학자들도 끊임없이 탐구했지만 인과관계에 관한 딜레마로 귀결됐다.
 
2010년 7월엔 영국의 셰필드대와 워릭대 연구팀이 닭과 달걀의 선후 관계를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연구 결과는 “수퍼컴퓨터로 달걀 형성 과정을 시뮬레이션했더니 닭의 난소에 있는 단백질이 달걀 껍데기 형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닭이 달걀보다 먼저라는 증명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에 사람들은 다시 “그러니까 그 닭은 어디서 나오느냐고”라고 되묻는다.
 
한국을 강타한 ‘살충제 달걀’ 파문은 ‘닭 vs 달걀’ 논쟁과 달리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 먹거리를 만드는 농가의 안전불감증, 안전을 챙겨야 하는 정부의 무능이 원인이다. 결과는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뒤집어쓴다는 것이다. 명쾌한 인과관계인데도 뭔가 께름칙하다. 수십 년 이어져 온 먹거리 파동에 익숙해서인지, 어처구니없는 가습기 살균제 파문이 불과 1년 전이어서인지 분노가 예전 같지 않다. 미리 본 영화처럼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빤히 알아서일까.
 
양계 농민들은 “살충제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말했다. 닭을 잘 키우려면 진드기를 박멸해야 했다. 값싼 달걀을 위해 빽빽한 사육장은 불가피했고, 약을 칠 방법은 ‘살충제 샤워’뿐이었다. 인체에 유해한 피프로닐은 언제든 구할 수 있었다. 친환경 인증까지 받았지만 살충제는 검출됐고, 그런 농장은 늘고 있다. 혹시나 메추리알로 전선이 넓어져도 마음의 준비는 돼 있다. 성인이 한 번에 300개 이상의 달걀을 먹어야 유해하다는 분석에는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하는 미안함마저 느낀다. 악은 평범하고, 위험은 익숙하다.
 
정치인들은 이번에도 국민을 대변하고 있다. “국내산 계란은 안전하다”고 했던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향해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고 집중포화를 날렸다. 사과를 받아내고 의기양양하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전수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실무자들은 일 더미에 파묻힐 것이다.
 
일련의 상황이 무상한 배설 과정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와중에 달걀의 지역번호와 농장 이름을 확인하는 주부들이 처량하다. 집에 사둔 달걀의 번호가 지난 토요일 로또처럼 TV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뒤죽박죽으로 닭과 달걀의 선후 논란을 닮아가는 ‘인재(人災)의 악순환’을 우리는 끊을 수 있을까. 수퍼컴퓨터에게 답을 묻고 싶다.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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