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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면역항암제 2종 처방 제한에 … 말기암 환자들 어쩌나

중앙일보 2017.08.18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면역항암제 오프라벨의 처방 제한을 풀어 달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최정동 기자]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면역항암제 오프라벨의 처방 제한을 풀어 달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최정동 기자]

말기 암에 걸리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게 혁신적 신약이다. 사용 허가를 받은 암이 아닌 다른 암환자도 신약에 매달린다. 일정 기간 지나면 허가 범위 안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약 두 가지의 쓰임새가 제한돼 말기 암환자가 지푸라기를 놓칠 처지에 놓였다.
 

신약 접근권 두고 환자-정부 충돌
비소세포폐암용 키트루다·옵디보
처방 길 막혀 당장 약 끊어야 할 판
전문가 “근거 없어 처방하기 곤란”
일부선 “대체약 없을 땐 허용을”

이들 신약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옵디보’다. 일반항암제처럼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고 몸의 면역력을 키워 암세포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4월 화학항암제(일반적 항암제)를 썼다가 효과를 못 본 비소세포폐암 환자용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났고 21일 건보가 적용된다.
 
지금은 비소세포폐암뿐 아니라 위·대장·육종 등의 다른 암환자도 사용한다. ‘면역항암카페’ 소속 600여 명의 환자다. 거의 모든 암종이 망라돼 있다. 허가받지 않은 것이어서 ‘허가 외 사용(오프라벨·off-label)’이라 부른다. 불법도 합법도 아니다.
 
큰 병원들이 “약효가 있다는 근거자료가 없다(근거 중심의 의료)”며 처방을 안 해 주다 보니 동네의원·요양병원 등이 처방해 주사를 놓는다. 입원하면 실손보험이 돼 약값(키트루다 350만~380만원, 옵디보 230만원 내외)의 10%를 환자가 부담한다.
 
“키트루다 맞고 위암 세포 많이 줄었는데 … ”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보건복지부가 건보 적용 의료기관을 대형병원 90여 개로, 오프라벨 처방은 70개로 제한하면서 탈이 나게 됐다. 요양병원이나 동네의원이 항암제를 처방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이런 무질서를 바로잡고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큰 병원으로 제한했다. 건보 환자는 부담이 5% 이하로 준다. 오프라벨 처방 환자는 보험도 안 되는 데다 동네의원·요양병원 등에서 처방받지 못하게 됐다. 대신 70개 병원으로 옮겨 처방받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60일 이상 걸린다.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이 "면역항암제 처방 제한 조치를 풀어달라"며 스케치북 피케팅을 하고 있다.[사진 면역항암 카페]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이 "면역항암제 처방 제한 조치를 풀어달라"며 스케치북 피케팅을 하고 있다.[사진 면역항암 카페]

 
김광선(40)씨는 2년 전 위암 말기 6~12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뇌·임파선 등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다. 병원에선 “항암제 투여도 무의미하다”고 했다. 암세포가 더 번졌고 위 출혈,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러다 지난해 10월부터 키트루다를 15번 맞았다. 통증과 복막의 암세포가 사라졌다. 위·뇌·간 등에 전이된 암세포도 크게 줄었다. 김씨의 부인은 “호스피스로 가야 한다던 남편이 2년 만에 아이스크림·라면 등을 먹는다”며 “약을 못 쓰게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값을 포함해 치료비가 1억원 정도 들었다.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21일부터 오프라벨 환자는 70개 병원으로 옮기되 ‘선 처방-후 심평원 허가’를 받도록 해 약이 끊기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면역항암카페 김태준 운영자는 “70개 병원이 ‘근거 부족’을 들며 처방을 안 해 줘 동네의원으로 옮겼기 때문에 앞으로 처방이 막힐 게 뻔하다. 처방하더라도 입원을 안 시켜 줘 실손보험 혜택을 못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 회원 40명은 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오프라벨 처방 금지 철회”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환자가 쓰고 싶다고 다 처방하나”
 
하지만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환자나 의사가 쓰고 싶다고 해서 모든 약을 처방할 수는 없다. 다만 충분한 임상 근거가 있거나(대장·두경부·방광암 등) 자료 축적 중(위암 등)이거나 과학적 근거가 있는 희귀난치병은 식약처 허가를 벗어나도 처방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인향 영남대 약학과 교수도 “영국 등 선진국도 의사가 오프라벨로 처방하려면 기관 윤리위원회나 해당 지역 전문가 기구의 ‘동료 심의’를 받는다”며 “‘의학적 근거가 약하더라도 대체약이 없을 경우 쓸 수 있게 한다’는 등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석중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70개 병원 다학제위원회(암 관련 여러 의사 모임) 논의를 거쳐 처방하되 동네병원으로 보내 거기서 주사를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미국·유럽의 식품의약국이 이미 승인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서 탁월한 효과가 입증된 신약을 오프라벨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다만 말기암처럼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만 쓰되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고 식약처에서 부작용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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