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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별별 칼국수에 두부두루치기 … 피소도 별미죠

중앙일보 2017.08.18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일일오끼 ② 대전  
대전은 스치듯 지나가면 영 재미없는 도시다. 1949년 비로소 시로 승격됐을 정도로 도시의 역사도 짧거니와 딱히 떠오르는 명소도 없다. 하지만 대전 시민들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자 값싸고 맛있는 먹거리가 넘치는 도시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맞다. 하루 정도 머물며 음식 문화를 체험해 봐야 살가운 매력이 느껴진다. 대전에서 20여 년간 활동해 온 음식 칼럼니스트 이성희(58)씨와 맛 탐방에 나섰다.
 

팥·들깨·추어 … 칼국수 50여 종
입가심엔 명불허전 튀김소보로
긴긴 밤은 대전부르스 막걸리와

 
12:00 칼국수가 향토음식이라굽쇼?
대전은 칼국수를 골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먹방 여행지다. 한국철도공사 직원의 회식 장소인 홍가네칼국수의 사골칼국수.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대전은 칼국수를 골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먹방 여행지다. 한국철도공사 직원의 회식 장소인 홍가네칼국수의 사골칼국수.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다. 대전의 2만1000개 외식 업소 중 칼국수 전문점은 566곳, 칼국수를 메뉴에 올린 음식점은 1756곳이나 된다. 대전에서는 2015년부터 해마다 칼국수 축제도 열린다. 이성희 칼럼니스트는 “대전은 1905년 대전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성장한 도시”라며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밀가루를 원조할 적에 대전역이 구호물자 집산지 역할을 했는데 이게 칼국수 유행에 일조했다”고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대전에는 골목골목에 칼국수 음식점이 있다. 61년 개업해 반세기 역사를 지닌 신도칼국수, 74년 전국 최초로 얼큰한 칼국수를 선보였다는 공주분식, 91년부터 추어탕에 칼국수를 말아먹는 메뉴를 판매하는 옥순네추어칼국수 등이 관광객 사이에 유명하다.
 
토박이만 아는 숨은 맛집을 알고 싶어 한국철도공사 대전역 이민성(47) 역장에게 칼국숫집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역장은 매주 한 번은 칼국수를 먹는다는 칼국수 마니아. 그가 꼽은 칼국수 맛집은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홍가네칼국수’(042-254-5945)다. “사골국에 면을 담가내는 사골칼국수야말로 대전이 원조인데 홍가네칼국수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이유였다.
 
2003년부터 홍가네칼국수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주경숙(72)씨는 국산 멸치와 한우 사골로 매일 6시간씩 국물을 우려낸다. 맛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음식 가격. 칼국수 한 그릇이 고작 4000원이다. 주씨 아들인 이근상(45) 사장은 “기차 출발 시간이 촉박한 와중에도 잊지 않고 들러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8년 전부터 칼국수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14:30 튀김소보로 아니어도 성심당
 
대전의 자부심으로도 불리는 빵집 성심당.

대전의 자부심으로도 불리는 빵집 성심당.

점심을 가볍게 먹었다면 디저트 맛보러 발걸음을 옮겨도 좋다. 대전 최고의 디저트가게는 당연히 ‘성심당’(1588-8069)이다. 성심당과 기차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성심당 창업주 임길순(97년 작고)씨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거제에 피란 왔다가 통일호를 타고 서울로 상경하던 중 기차 고장으로 대전역에 하차했다. 임씨가 대흥동성당 신부님께 받은 밀가루 두 부대로 56년 대전역 앞에 찐빵가게를 연 것이 성심당의 시작이다.
 
성심당이 전국 맛집으로 뜨게 된 계기도 철도와 관련이 있다. 2013년 대전역사에 직영점을 냈는데, 기차로 오가며 빵을 맛본 손님들은 나중에 성심당 빵을 사기 위해 일부러 대전역에서 내렸다. 특히 튀김소보로(1500원)는 대전역 지점에서만 하루 1만 개가 나갈 정도로 인기다.
 
성심당의 여름 한정 메뉴 ‘전설의 팥빙수’.

성심당의 여름 한정 메뉴 ‘전설의 팥빙수’.

사실 여름철 성심당의 명물은 따로 있다. ‘전설의 팥빙수’(5000원)다. 대전역점에서는 팔지 않고 5~8월 대흥동 본점으로 가야 먹을 수 있다. 전설의 팥빙수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서걱서걱한 얼음 가루 위에 냉동 딸기, 생크림과 떡 고명, 그리고 국내산 팥을 한가득 올린다. 눈꽃빙수 등 부드러운 빙수가 유행이지만 얼음을 거칠게 갈아 넣은 팥빙수의 본형을 지킨다. “우유 얼음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생수 얼음의 시원한 맛”을 위해서다.
 
16:00 맛으로 승부하는 커피 전도사의 집
대전에 커피 문화를 알려 온 카페 커피전도사의 집.

대전에 커피 문화를 알려 온 카페 커피전도사의 집.

 
대전역 일대 중앙동·은행동·대흥동은 대전에서 가장 번성한 상권이었지만 90년대 둔산 신도시 개발 후 침체를 겪었다. 둔산 쪽에서 인테리어가 화려한 카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가장 맛 좋은 커피를 찾는다면 원도심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은행동 ‘커피전도사의 집’(042-221-6200)이 답이다. 2001년 문을 연 카페로, 2004년 대전에 스타벅스가 처음 들어서기 전부터 지역에 커피 문화를 알려왔다.
 
커피전도사의 집은 원래 10㎡ 남짓한 크기의 로스팅 기계 판매점이었다. 주인 조영환(63)씨는 가게 한쪽에서 손님에게 갓 볶은 커피를 내려줬는데, 그 맛이 입소문을 타자 아예 카페로 전업했다. 조씨는 2017년 3월 은퇴했고 현재는 아들 신재(37)씨가 카페를 이끌고 있다. 지금은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널찍한 가게로 이전했다. 커피전도사의 집은 그날 볶은 신선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신재씨는 한 달 평균 원두 1t을 볶아 커피를 내린다.
 
18:00 소주잔 기울이는 양식당
 
손님이 직접 고른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주는 양식당 컬리나리아.

손님이 직접 고른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주는 양식당 컬리나리아.

대전의 ‘힙’한 식당은 둔산 신도시에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2017년 3월 개업한 ‘컬리나리아’(042-471-1090)가 핫플레이스다. 대전에서 20년째 정육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최광춘(59) 대표가 사위인 YG푸드 수석 셰프인 백상준(36)씨와 함께 차렸다. 요식업에 잔뼈가 굵은 최 대표의 노련미와 트렌드에 밝은 백 셰프의 재기발랄함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양식당 컬리나리아에서는 피소(피자+소주)도 문제없다.

양식당 컬리나리아에서는 피소(피자+소주)도 문제없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양식당이 이곳 콘셉트다. 메뉴는 스테이크·피자·파스타 등 양식 일색이지만 주류는 와인·맥주를 비롯해 대전·충청 지역 대표 소주 ‘O₂린’까지 갖춰 놨다. 유리병에 소주를 담아줘 눈치 안 보고 ‘피소(피자+소주)’ ‘치소(치킨+소주)’를 즐길 수 있다.
 
최 대표는 “내 또래는 양식당을 불편한 곳으로 생각한다”며 “피자와 스테이크 먹으면서도 마음 편히 소주 한잔 할 식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컬리나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스테이크다. 살치살·안심 등 냉장고에 진열된 고기를 눈으로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다. 고기 가격에 조리비 1만원을 추가하면 400도로 달군 주물판에 구워 준다.
 
21:00 대전의 심야식당 대전부르스
 
예술가의 아지트 같은 술집 대전부르스.

예술가의 아지트 같은 술집 대전부르스.

대전 먹방 여행의 밤이 지나는 것이 아쉽다면 허름한 술집 ‘대전부르스’(042-532-6587)로 향하자. 대전부르스가 있는 대흥동에는 소극장이 23개가 있는데, 인근의 지역 예술가들이 주 고객이다.
 
대전 지역 막걸리 대전부르스(3000원)와 함께 맛볼 만한 대전부르스의 주력 메뉴는 전. 테이블마다 부추전·녹두전(각 1만~1만5000원)을 시켜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대전부르스 이순자 대표는 손님이 원하면 메뉴에 없는 음식도 뚝딱 만들어준다.
LP 3만 장을 전시해 둔 맥주바 카우보이.

LP 3만 장을 전시해 둔 맥주바 카우보이.

 
대전부르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LP바 ‘카우보이’(042-255-0937)도 대전의 밤을 보내기 좋은 장소다. 박상용 대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LP 수집가로 약 3만 장의 LP를 소장하고 있다. 매일 밤 박 대표가 DJ로 변신해 신청곡을 틀어주고 구수한 입담도 푼다. 병맥주·칵테일 7000원 선.
 
다음날 10:30 두루치기 삼국지의 승자는?
광천식당의 두루치기. 개운하게매운 맛이 특징이다.

광천식당의 두루치기. 개운하게매운 맛이 특징이다.

 
‘두루치기’라고 하면 서울 사람은 백이면 백 돼지고기볶음을 떠올린다. 반면에 대전에서 두루치기는 곧 두부두루치기다. 두부에 얼큰한 국물을 자작하게 곁들인 음식이다. 화끈하게 매운 두루치기 아점(아침과 점심 사이 식사)은 대전 먹방 여행을 종결 짓기 좋다.
 
대전에 두루치기로 유명한 맛집이 3곳이 있는데, 모두 택시를 타고 이름만 대면 데려다 주는 명성 있는 식당이다. 그중 ‘진로집’은 순두부를 내고 ‘별난집’은 비교적 담백한 두루치기를 만든다. 80년 개업한 ‘광천식당’(042-226-4751)은 가장 매콤한 편이다. 마늘과 고춧가루·간장으로만 양념해 고추장 양념처럼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매운 것이 특징이다.
 
광천식당은 개업 이후 줄곧 대전 두부공장인 ‘모태두부’에서 주문 생산한 두부를 받아다 쓴다. 김이곤(55) 대표는 “하루 종일 끓여도 부서지지 않게끔 하기 위해 단단하게 만든다”고 귀띔했다. 두부를 하루 55㎏ 정도 소진할 정도로 테이블마다 두부두루치기를 필수로 주문한다.
 
대전 토박이들이 광천식당에서 두루치기 외에 주문하는 메뉴는 역시 칼국수. 남은 두루치기 양념에 칼국수 면을 건져 비벼 먹으면 그게 또 별미다.
 
대전=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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