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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 '지나가나…', 김숨 소설 '이혼' 본심에

중앙일보 2017.08.18 00:15
 <미당문학상 후보작>
 
 신용목 -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등 19편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이죠. 그것을 보고 있으면, 우리 몸에서 끝없이 천사들이 달려나와 지상의 빛 아래서 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나의 시선과 나의 목소리와 거리의 쇼윈도에도 끝없이 나타나는 그들 말입니다.
 오랫동안 생각했죠. 깜빡일 때마다 눈에서 잘려나간 시선이 바람에 돌돌 말리며 풍경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거나, 검은 소떼를 끌고 돌아오는 내 그림자를 맞이하는 밤의 창가에서… 목소리는 또 어떻구요. 투명한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흩날리는 목소리에게도 내세가 있을까? 아, 메아리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겠지요.
 
 갑자기 쇼윈도에 불이 들어올 때,    
                                                                     
 (…)
  
 
 
 ◆신용목 
 1974년 경남 거창. 고려대 국문과 박사.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아무 날의 도시』,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내가 읽은 신용목 - 김수이 예심위원
 속에 살고 있는 천사들. 그리고 이 천사들을 살해하는 악마들. 악마들 역시 우리 속에 거주한다.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는 바로 이 천사와 악마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천사는 힘없이 스러지는 일이 많은 반면, 악마는 끈질기게 창궐한다. 물론 그 반대의 사건도 일어난다. 천사의 승리가 드물어 보이는 것은 단지 체감의 탓일 수도 있다.    
 신용목은 차마 ‘악마’라고 쓰는 대신, 매일 저녁 어둠이 내리는 “이 시간”이라고 쓴다. 악마라는 주어를 품은 희미한 시간은, 천사를 살해하는 자가 구체적인 실체를 넘어 사회 공동체에 널리 퍼진 음험한 생각이며 분위기임을 암시한다. 천사를 살해하는 것은 “지상의 빛”, 그러니까 현대문명이 만든 텅 빈 욕망과 상품들이다. 영혼은 진짜 살해되고, 몸은 가짜로 구원받는 지금 여기의 시간과 장소들.  
 신용목은 이 살해사건의 현장이 “우리 몸”임을 강조한다. 구원이 일어나야 할 곳도 여기다. 구원이라니! 이 신성하고도 진부한 덕목을 신용목은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의 시에 또렷이 새겨넣는다. 슬픔, 아름다움 등의 단어도 마치 처음인 듯 쓰고 또 쓴다. 가장 서정적인 것이 가장 저항적인 것이 되는 시대의 역설을 신용목은 날마다 천사와 악마의 시간을 넘나드는 자신의 몸을 통해 발견하고 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평론집 『서정은 진화한다』『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등.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김숨 - '이혼'(문학동네 2017년 봄호)
 
 지난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지.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을 들은 뒤로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그가 한 말이 여전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오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걸.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자신이, 자신의 영혼조차 어쩌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이혼이 나는 통과의례 같아. 나도, 당신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시속 백이십 킬로로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만난 터널처럼…”
 “그래…”
 “나는 이혼이라는 통과의례가 내게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
 “그래야겠지…”
 “당신에게는 더더구나 불행이 아니기를 바라고 바라…”
 “그래, 그래야겠지…”
 
  
   
 ◆김숨
 1974년 울산. 대전대 사회복지학.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98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장편 『한 명』『L의 운동화』, 소설집 『간과 쓸개』『국수』『투견』 등. 허균문학작가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대산문학상 수상. 
  
 #내가 읽은 김숨 - 이수형 예심위원 
 김숨의 '이혼'은 협의이혼을 위해 남편과 함께 법원을 찾은 그녀(민정)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발췌된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 그녀의 갈등은 이혼을 할 것인가,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물론 2017년의 한국사회에서 이혼 자체가 낯설거나 충격적인 사건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녀의 고민 역시 맥 빠진 것일까? 최근에 나온 통계청·여성가족부의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는 여성 34.2%, 남성 45.0%로 조사되고 있거니와, 이혼율 급증 운운하는 언론 보도를 기억한다면 이혼에 대한 반대가 생각보다는 높은 편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그중 ‘어떤 이유로도 안 된다’는 여성 8.6%, 남성 10.4%로 나타나 불과 한 세대 전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런데 이혼에 대해, ‘해서는 안 된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유가 있으면 하는 것이 좋다’ 등으로 나뉜 항목에 대한 응답률이 과연 우리에게 이혼에 대해 얼마만큼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뭔가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많이 어떤 오해나 착각도 함께 전달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김숨의 '이혼'은 어느덧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적인 이혼이라는 사건 앞에서, 어머니와 딸의 날줄과 동시대 남녀 군상들의 씨줄을 엮어 통계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가능한 진실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넓고 진지하게 접근해 가는 소설이다. 
 
 ◆이수형 
 1974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 국문과.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명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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