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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산란계 농장 가보니…모두 케이지에 ‘밀집 사육’

중앙일보 2017.08.17 12:45
지난 16일 오후 2시 30분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지리 ‘지현농장’. 이날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산란계 농장이다. 농장 옆쪽 틈을 통해 농장 안쪽을 살펴보니 케이지(철재 우리) 안에 닭들이 고개만 내민 채 모이를 쪼고 있었다. 케이지 아래에는 피프로닐 검출로 수거하지 못한 계란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강원 철원, 경기 남양주ㆍ양주ㆍ광주 등
움직이기 힘든 케이지에 5∼6마리 빼곡

여름철 닭 진드기 생길 수 밖에 없는 환경
진드기 박멸 위해 약품 사용하다 문제 생겨

전문가 “좁은 케이지 사육 방법 개선해야”
동물 복지 차원에서 케이지 반대 의견도

1000㎡ 규모의 계사 안에서는 닭 4만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한쪽에선 케이지 시설 개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업체 관계자는 “이 농장의 경우 닭을 키우는 케이지 크기가 가로 55㎝, 세로 50㎝, 높이 45㎝이고 6단으로 쌓여 있다”며 “최대 6마리의 닭이 케이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강원도 철원군 '지현농장' 계사 내좁은 케이지에 닭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강원도 철원군 '지현농장' 계사 내좁은 케이지에 닭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박진호 기자

 
알을 낳는 닭의 몸무게가 2㎏ 안팎인 점을 고려할 때 좁은 케이지 안에서 몸을 움직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이날 케이지 안에 닭들은 머리를 아래위로만 움직일 뿐 고개를 돌리거나 크게 움직이지 못했다. 농장주 이모(52·여)씨는 “현재 케이지마다 5마리의 닭이 들어있다”면서 “닭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케이지 하나에 들어가는 닭의 숫자를 줄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살충제 계란’이 나온 산란계 농장들을 직접 찾아가 보니 모두 밀집 사육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닭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좁은 케이지 안에서 사육했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게다가 여름철 기승을 부리는 닭 진드기 퇴치를 위해 공인되거나 공인되지 않은 약품을 사용했다는 점도 같았다.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경기도 양주시 '신선2농장' 계사 내 비좁은 케이지에닭들이 가득차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경기도 양주시 '신선2농장' 계사 내 비좁은 케이지에닭들이 가득차 있다. 임현동 기자

 
이와 관련, 재래닭 복원 전문가인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현인농원’ 홍승갑(77) 대표는 “야생 닭은 흙에 몸을 문지르거나 발로 몸에 흙을 뿌려 진드기를 제거한다. 하지만 좁은 케이지에서 갇혀 사는 산란계는 스스로 진드기를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산란계 농가의 94%인 1370여 곳 농가가 케이지를 사용해 닭을 키우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추가로 확인된 산란계 2만3000마리를 키우는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신선2농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찾은 이 농장에서는 가로 60㎝, 세로 60㎝, 높이 50㎝ 규모의 자그만 케이지 안에 산란계가 6마리씩 들어 있었다. 복도식으로 케이지가 길게 연결돼 있고, 아래 위 3단으로 케이지가 쌓여 있는 형태였다. 케이지는 닭이 걸어다니거나 움직일 수 없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계사도 낡은 상태였다.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경기도 양주시 '신선2농장' 계사 내 비좁은 케이지에닭들이 가득차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경기도 양주시 '신선2농장' 계사 내 비좁은 케이지에닭들이 가득차 있다. 임현동 기자

 
이 농가의 계란에서는 비펜트린이 기준치(0.01㎎/㎏)의 7배 수준인 0.07㎎/㎏가 검출됐다. 경기도는 해당 농장의 계란 유통을 전면 중단하고 모두 회수하도록 조치한 상태다. 경기도는 이 농장에서 보관하고 있는 계란 6만3900개와 이곳에서 중간유통상 6곳을 통해 유통된 계란 5만1300개 등 11만5200개를 모두 회수해 폐기 조치하고 있다.  
 
양주시 해당 농장주는 이런 여건상 진드기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농장주 이모(50)씨는 “3주 전쯤 습하고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닭에 진드기가 많이 발생해 허용된 (진드기 박멸) 약품을 구매해 계사에 뿌렸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닭을 키우다보니 덥고 습한 여름철이면 진드기가 많이 생겨 약품을 뿌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진드기 제거를 위한 기존 약품의 경우 내성이 생겨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진드기를 효과적으로 박멸하고 인체에도 무해한 약품 개발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경기도 양주시 '신선2농장' 내 낡은 계사의 외부모습. 임현동 기자

지난 16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경기도 양주시 '신선2농장' 내 낡은 계사의 외부모습. 임현동 기자

 
지난 15일 ‘살충제 계란’이 확인된 경기도 남양주시 ‘마리농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가로 50㎝, 세로 50㎝ 규모의 자그만 케이지 8000개에서 산란계 4만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케이지 마다 산란계 5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다. 복도식으로 케이지가 길게 연결돼 있는 형태다. 3단으로 이뤄진 복도식 닭장 속에 산란계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닭은 앞쪽에 설치된 모이통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을 뿐이었다.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경기도 광주시 ‘우리농장’ 역시 공장식 축산 농가였다. 4단 높이로 쌓은 케이지에서 산란계 4만5000여 마리를 키웠다. 박소연 동물권보호단체 케어 대표는 “가축질병 예방은 물론 동물에게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좁고 비위생적인 케이지에 닭을 가둬 사육하는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 회장은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진드기 감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체적으로 1400만마리의 산란계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94%가 진드기에 감염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농가에서 살충제를 계속 쓰다 보니 내성이 생겼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상당수 농가에서 진드기 관리를 위해 금지된 살충제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닭 복원 전문가인 파주 ‘현인농원’ 홍승갑 대표는 “좁은 케이지 안에 닭을 밀집 사육하게 되면 닭의 면역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각종 가축 질병과 심지어 AI(조류인플루엔자)의 발생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주·남양주·철원·경기 광주=전익진·박진호·김민욱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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