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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동해’ 이끈 권병현 전 대사 “한·중 수교의 1등 공신은 마오타이”

중앙일보 2017.08.17 01:01 종합 20면 지면보기
1992년 4월 13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과 이상옥 외무부 장관이 극비리에 만났다. 이 만남이 한·중 수교 협상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임명된 ‘담판 대표’가 권병현(79·사진) 전 주중대사였다. 한·중 수교 25주년(8월 24일)을 맞아 권 전 대사를 지난 11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협상 결렬 위기, 술 마시며 풀어
중국 측 “대만과 단교하라” 요구에
“북한과 먼저 혈맹 끊어라” 응수

한·중 수교는 세계를 흔든 역사적 사건이었는데.
“중국의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 89년 6·4 천안문 사태의 유혈진압으로 서구 자본의 대탈출이 이어지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한국과의 수교를 결심한 것 같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이상옥 장관이 돌아와서 ‘극비사항이다. 가장 이른 시일 내에 해치우라’고 지시했다. 작전명은 ‘동해’였다.”
 
첫 협상은 어땠나.
“댜오위타이에 협상하러 들어갔더니 중국 대표는 ‘우선 한국이 대만과 관계를 끊는 문제부터 이야기하자’고 했다.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그냥 돌아가라고 하더라.”
 
처음부터 결렬 위기에 봉착했나.
“‘배후에서 지시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못 돌아간다’고 버텼다. 그제야 쉬둔신(徐敦信) 부부장이 나왔다. 양쪽 대표단 모두 마오타이를 마시고 대취한 다음에야 2차 협상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한·중 수교의 1등 공신은 마오타이다.”
 
결국 대만과의 단교가 쟁점이었을 텐데.
“마지막 3차 협상에서 ‘중국이 북한과의 혈맹을 끊어야 우리도 대만과 단교한다’고 했더니 중국 대표단이 ‘혈맹을 끊으려고 하니 한국과 수교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으로서도 결단이었는데.
“‘하나의 한국’을 위해 ‘하나의 중국’과 교환한 것이었다. ‘우리는 대만과 단교할 테니 너희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만은 보장하라’는 것이 수교의 핵심이었다.”
 
중국은 북한에 어떻게 통보했나.
“7월 15일 첸치천 부장이 양상쿤(楊尙昆) 주석의 친서, 사실상 덩샤오핑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김일성 주석이 ‘중국이 중국식대로 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조선도 조선식대로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혈맹이 깨졌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선택한 조선식이 바로 핵 개발의 시작이었다.”
 
지금 사드 문제로 한·중 간에 갈등이 깊다.
“지난 5월 11일 베이징에서 당시의 수교 주역 원로들이 모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중국 인사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더라. 나도 ‘해는 또 뜬다’고 말했다.”
 
사드 갈등이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로 남지 않을까.
“한국과 중국은 숙명적 관계다. 그런 숙명적 관계를 사드가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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