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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창 강제징용자들 저항 의지 담았다

중앙일보 2017.08.17 01:00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난 14일 인천 부평공원의 ‘징용 노동자상’을 배경으로 선 조각가 이원석씨. [장진영 기자]

지난 14일 인천 부평공원의 ‘징용 노동자상’을 배경으로 선 조각가 이원석씨. [장진영 기자]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일한 분들의 불안감과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담고 싶었다.”
 

부평공원 ‘노동자상’ 만든 이원석씨
징용자·후손 찾아내 경험담 들어
앞으로도 계속 노동자상 세울 것

지난 12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인천시 부평공원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51) 작가를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가 강제징용 조각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민족미술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만든 ‘희망 촛불탑’이 계기가 됐다. ‘희망 촛불탑’은 지난해 말 촛불민심이 한창일 때 광화문 광장에 세웠다. 그는 올 2월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안서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가 동상 추진을 위한 작가 공모에 나섰을 때 주변에서 이씨를 추천한 것이다.
 
동상 제작 작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우선 인천 부평 조병창에 대해 아는 주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물어봤는데 ‘현 부평공원이 1939년 당시 미쓰비시(三菱) 중공업 공장부지였다’는 사실보다 ‘3개의 (왕)릉이 있었던 곳’으로 알고 있었다. 미쓰비시의 한자인 ‘삼릉’을 ‘과거 3개의 릉이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후 기초적인 고증 작업을 시작했다. 인터넷과 신문 기사, 관련 서적을 두루 찾았다. 징용의 개념부터 시작해 조병창까지, 부평문화원의 자문도 받았다. 한 달여 뒤 조병창의 강제징용은 해외로 끌려간 다른 지역의 사례와 달리 국내에서 조선인들이 착취 당한 현장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는 “제국주의 치하의 조병창이었던 인천 부평에도 분명 해방과 독립을 열망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낸 인물이 고(故) 이연형(2009년 87세 사망) 할아버지와 지영례(89) 할머니다. 그는 이 할아버지의 딸과 지 할머니를 찾아내 그들의 경험과 기억을 직접 들었다. 그는 “지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들이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가기 위해 집집마다 처녀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을 보고 징용을 선택했다. 당시 징용 당했다고 하면 정신대로 끌고 가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병창 의무실에서 팔다리가 잘린 조선인들을 목격한 지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소녀 동상의 불안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 자녀들로부터는 “아버지가 조병창에 끌려갔다가 그 안에서 노동자들을 선동해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사실도 확인했다.
 
이씨는 이들 실존하는 동시대 인물을 부녀지간으로 표현했다. 딸은 공포가 다가오지만 어디인지 몰라 두려움에 찬 시선이 강조됐다. 아버지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저항의 의지로 언제든지 공격이 가능한 해머를 쥐고 의연하게 맞서려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삶을 모두 담아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계속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평공원에 세운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해방의 예감’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고양=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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